세월이 흘러 이제는 있는 집을 더 좋게 가꾸려는 욕구가 내 집 장만의 희망만큼 강한 세상으로 변했다. 필요성을 절감한 주민이 리모델링 사업에 앞장선 지도 꽤 오래전부터다. 1991년 입주를 시작한 경기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1기 신도시 주민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특히 전용면적 60m² 미만에 사는 이들의 의지가 강하다. ‘좁고, 낡고, 힘든’ 세 가지를 어떻게든 개선하고 싶어 한다. 좁은 공간과 낡은 배관, 빈자리 없는 지상주차장이 바로 그것이다. 어디 1기 신도시만의 일이겠는가. 지은 지 15년 넘은 전국의 아파트는 해마다 늘어난다. 2009년 기준으로 15년 이상 된 아파트는 약 300만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파트 고령화’ 문제는 ‘인구 노령화’만큼이나 쓰나미처럼 몰려온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터이다.
주민 편에서 계산할 때 리모델링 사업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다. 완전 철거 뒤 새로 짓는 재건축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목돈이 들어간다. 비용 부담에 크게 한숨짓는 이들은 작은 아파트 주민이다. 욕구는 가장 크지만 많은 돈을 들여 봤자 늘어나는 면적은 손바닥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리모델링할 때 층을 높여 늘어난 집을 일반분양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10% 늘어난 가구를 분양하면 비용이 30% 정도 줄어든다는 셈법까지 내세운다. 그렇다고 기존 법령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막무가내 식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령이 정한 용적률 증가 허용치인 30% 안에서 아파트단지 주민끼리 의논해 크기를 늘릴 집을 정하는 ‘용적률 총량제’ 아이디어에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사이 관이 주도해, 그것도 인심 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면이 다가오고 있다. 2012년 4월 치러지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다.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정치권이 리모델링이라는 대어(大魚)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역대 대통령을 들먹일 것도 없이 많은 여야 후보가 뉴타운 공약으로 재미를 본 18대 총선이 엊그제 일인 듯하다.
총선을 앞두고 리모델링이 거론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의 한 표가 급한 각 정당이 내놓는 선심성 공약의 틀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감당 못할 지경으로 치달아 부작용이 더 커질 위험도 없지 않다. 정부가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해당 주민과 머리를 맞대야 할 이유다. 어쩌면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