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3분의 2… 조개잡이중 표류? 가난 못이긴 보트피플?
5일 오전 11시경 연평도 동북쪽 9∼18km 해상에 북한 어선 한 척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쪽으로 이동 중인 것이 포착되자 해군 함정이 쏜살같이 쫓아갔다. 함정은 어선에 타고 있던 북한 주민 31명을 연평도가 아닌 인천으로 바로 데려갔다. 군 당국이 이들을 정보 당국에 넘기자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NLL을 넘은 이유 등에 대해 심문하기 시작했다. 설 연휴 끝자락에 해군과 정보 당국은 전례 없는 30여 명의 집단 월남으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부산했다.
○어디서 와서 왜 연평도로 향했나
북한 주민 31명이 연평도 인근 NLL을 넘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이들이 어디서 왔고 왜 연평도로 향했는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고 있다. 연평도는 불과 3개월 전 북한군이 방사포 사격을 가해 민간인 사상자를 낸 곳인 만큼 남북한 모두 이 인근에 대한 경계태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월남이든 월북이든 사전에 쉽게 발각될 수 있다. 연평도가 북한 해안가로부터 불과 12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월남을 쉽게 할 수 있다지만 삼엄한 경계를 무릅쓰고 남하를 결행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표류일 경우 조류 때문에 연평도가 목적지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북한에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 목함지뢰 일부가 연평도까지 흘러가기도 했다.
○어선? 31명 가운데 여성이 20명?
군 당국은 북한 주민 31명이 타고 온 배를 어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31명 가운데 20명이 여성이어서 왜 여성 20명이 어선에 타고 있었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군 관계자는 “북한에는 조개잡이 부녀자가 많은데 이들이 타고 온 배가 어선이라면 이 어선은 조개잡이 배일 가능성이 크다”며 “조개잡이에는 여성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선 한 척에 여성이 20명이나 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북한판 ‘보트피플’ 가능성?
배를 이용한 집단 탈북 가능성에 대해서도 정보 당국은 면밀히 조사를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표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보트피플일 경우 지금까지의 보트피플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 그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이는 김정은 후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북한의 급변사태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역대 최대 규모의 보트피플은 2002년 8월 서해상으로 귀순한 순용범 씨 가족 등 북한 주민 세 가족 21명이다. 이들은 남자 14명, 여자 7명이었고 그중 7명은 어린이였다. 이들은 평안북도 선천을 떠난 뒤 공해를 우회해 남하했다. 최초의 북한판 보트피플은 1997년 1월 서해상으로 탈북한 김영진 씨와 유송일 씨 가족 8명이다. 1987년 귀순한 김만철 씨 가족은 배로 탈출했지만 최종적으로 남한 입국은 비행기로 했기 때문에 보트피플로 분류되지 않는다.
○발표 늦추는 정부?
정부 당국은 북한 주민들을 인천으로 이동시킨 뒤 조사를 하루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발표는 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며 아직 조사가 덜 끝났다”면서 “일부 주민은 귀순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만 말했다. 정부가 발표를 늦추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경색된 남북 관계가 최근 군사실무회담 개최 합의로 진전의 기미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칫 집단탈북 등 북한 체제에 타격을 주는 결과가 나올 경우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해 5도 경계태세 이상 없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국군은 서해 5도에 대한 경계태세를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어선이 NLL을 넘었는데 이 어선이 NLL을 넘는 과정에서 한국군이 제대로 대응을 했는지도 관심 대상이다. 일단 군 당국은 어선이 NLL을 넘어오자마자 함정을 출동시켜 어선과 북한 주민을 인천으로 이동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