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장석조네 사람들’ 대본★★★★ 연출★★★★ 연기★★★★ 무대★★★☆
《설 연휴 기간을 장식한 공연 중 최고의 작품이었다. 1970년대 서울 변두리 한 지붕 아홉 가족이 아옹다옹 살아가는 이야기는 정겹고도 튼실했다. 경상 전라 충청 이북을 넘나드는 사투리의 향연을 펼친 배우들의 연기는 차지면서도 쫀득했다.》
한 지붕 아홉 가구가 모여 살던 시절의 정겹고 눈물겨운 사연들을 질펀한 사투리의 향연으로 엮어내 현대적 마당놀이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 ‘장석조네 사람들’. 사진 제공 극단 드림플레이
이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형식미학의 중심이 바로 아홉 가구가 세 들어 사는 허름한 주택 한가운데 자리 잡은 평상이었다. 평상은 장석조네 사람들이 울고 웃고 다투고 화합하는 중심공간이자 때로는 내밀한 밀실이 됐다가 때로는 왁자지껄한 광장으로 변하는 천변만화의 공간이었다. 그 평상이 우리 전통 마당놀이의 무대였던 멍석 아니겠는가.
서민들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질펀한 사투리와 능청맞은 비유를 그대로 살려낸 김소진 특유의 문체는 그대로 맛깔스러운 대사가 되어 펄펄 뛰논다. 그 운율에 맞춰 호흡을 내뱉고 몸을 놀리면 그게 절로 연기가 된다. 관객도 그 흥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쏟아낸다.
그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수많은 극작가가 꿈꿔왔던 한국적 신명이 뛰노는 희곡이 도시 변두리서 자란 386세대 소설가의 혀끝에서 빚어진 것이다. 또한 전통연희 양식보다는 서양적 연극양식을 더 천착해온 극단 드림플레이의 배우들 몸속에서 피어난 것이다. 김소진 소설의 연극적 가치에 주목해 이를 각색하고 연출한 김재엽 드림플레이 대표의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연극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장석조네 사람들’에서 이름 석자 뚜렷한 사람은 수많은 에피소드에서 조연 신세를 면치 못하는 못된 집주인 장석조뿐인 것을. 반면 그 에피소드들의 주인공 대부분은 “이름 석자가 무거워 허덕였던 이들”이었다. 그렇게 익명성 속에 숨겨진 동질감은 객석 바로 앞에 설치된 재래식 화장실에서 웃음꽃으로 피어났다.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관객의 코앞에서 바지를 까고 용을 쓰는 배우들을 통해 똥 앞에 우리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면서.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