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총리실 컨트롤타워 구속력 없어중구난방 한국어 교육과정 3개부처 중복
지난해에는 8개 부처에서 30여 개 사업을 시행했다. 지자체를 합치면 3000여 개가 넘는다. 부처별로 제각각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중복 사업→예산 낭비 사례가 숱하다. 다문화정책의 비효율성은 이런 상황과 연관이 깊다.
다문화가족 자녀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자 여성가족부는 다문화가족 언어발달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생 멘터링-다문화가족 언어교육을, 보건복지부는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를 다문화가족으로 확대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거의 같다. 다문화가족을 직접 찾아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대상자는 당연히 중복된다. 취학 전이면 여성부와 복지부 서비스를, 학교에 다니면 여성부와 교과부 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지자체의 사업과 민간 프로그램을 합치면 유사 또는 중복 문제는 더 심각하다.
○ 다문화가족정책위 10개월 공전
정부는 2009년 국무총리실 산하에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다문화정책을 총괄 조정하기 위해서다. 9개 부처가 참여해 ‘다문화가족지원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의 중복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지난해 5월 이후 지금까지 회의를 열지 않았다.
국무총리 훈령에 근거한 조직이라 부처별 이해를 조정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위원회의 논의 내용이 강제력을 가지려면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역할과 일정을 명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위원회의 설립 규정을 법으로 명시한 다문화가족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여성가족정책과 사무관 1명이 다문화업무를 전담하고 있고 아무래도 위원회로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이민청 같은 별도 조직을 만드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문화지원 서비스의 ‘부익부 빈익빈’
조선족인 손태풍 씨(45)는 3년 전 결혼해 두 살 된 아들이 있다. 지난해 8월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서울 마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았다. 이후 부모 교육을 받고 배냇저고리와 한복 만들기 수업을 듣는 중이다. 아이는 자원봉사자가 돌봐준다. 손 씨는 “센터를 찾기 전에는 아무 서비스도 받지 못했다. 진작 알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기관 간 협력과 연계가 잘되지 않으니 다문화지원사업 쇼핑족이 생길 정도. C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최근 한 결혼이주여성이 이곳 외에도 다른 2개의 복지관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이 센터는 중복 수강을 금지하지만 일일이 찾아내기는 힘들다. 다문화가족을 위한 민간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정부의 보육비 지원을 받으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자체의 경우 다문화사업을 유행처럼 추진하지만 전담조직을 갖춘 곳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신명옥 무지개청소년센터 소장은 “지역사회 단위로 다문화서비스가 이뤄지는 만큼 지자체의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되지만 전담부서가 없는 곳에서는 업무 핑퐁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모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역사회 민관협력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절반가량인 7곳만 다문화 전담부서를 만들었다. 나머지는 복지나 여성 관련 부서에서 담당한다.
○ 현장 중심의 큰 그림 그려야
몸은 하나인데 이 행사, 저 행사 모두 참석하느라 김 씨는 주말을 쉬지 못했다. 그는 “부처별, 지자체별로 일회성 행사를 각각 열다 보니 현장의 혼란은 극심하다. 도는 다문화사업 수립과 예산 분배를 맡고 시군구는 현장 위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효율성 못지않게 장기적인 다문화정책 추진에 소홀한 점이 더 큰 문제. 정부 내에서도 합의가 되지 않다보니 다문화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큰 그림’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용어만 해도 그렇다. 여성부는 다문화가족, 교과부는 다문화가정, 법무부는 외국인가정이라고 부른다. 정책 대상자의 범위도 다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갑자기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상태”라며 “가족 복지 이민정책의 복합적 성격을 가지므로 이를 통합하는 큰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고건 前사회통합위원장 “다문화 대안학교 ‘다솜학교’ 설립 험난” ▼
4개부처+지자체+교육청 업무 얽혀있어…
2009년 말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한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는 10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외국인·결혼이민자와의 동행’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으로 추진한 것이 다솜학교 설립이었다. 이는 본보가 2009년 연중기획으로 게재한 ‘달라도 다 함께-글로벌 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 시리즈가 계기가 됐다.
초대 사회통합위원장을 지내며 다솜학교 설립을 추진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사진)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아일보 다문화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숙독하면서 다문화 정책과 관련된 문제점을 찾아냈다”면서 “그중 하나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없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언어와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한 다문화가정 자녀는 전체 취학연령대 4만2676명 중 7360명(17.2%)에 이른다. 특히 고등학생 연령 자녀가 약 2000명에 달해 이들이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할 경우 해결하기 힘든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우려됐다.
이에 사통위는 지난해 7월 6일 교육과학기술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등 관계 부처와 지자체가 참여한 가운데 다솜학교 추진기획단 1차 회의를 열고 본격적으로 다솜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솜학교의 필요성 자체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참석자가 많았다.
컨트롤타워가 없어 학교에서 벗어나 있는 청소년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대법원 행안부 법무부의 협조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 전 총리가 직접 추진기획단 회의를 10차례 주재하며 다솜학교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학교 용지 선정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당초 가장 유력한 장소는 한국폴리텍대 강서캠퍼스였다. 하지만 이 캠퍼스 일부 터가 공원용지로 묶여 있었다. 이 때문에 다솜학교에 맞도록 증·개축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아서 결국 포기했다. 이에 고 전 총리와 사통위 관계자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학교 용지를 찾았고, 지난해 말 사통위 교과부 서울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흥인동 성동공고에 내년 3월 다솜학교를 개교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고교 학년별로 2개 학급씩 모두 6개 학급에 정원은 120명이고, 전기전자 기계 패션 컴퓨터 조리 등을 가르친다. 졸업을 하면 고교졸업 학력이 인정되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사통위는 경기도에 추가로 다솜학교를 개교하는 것과 전국 단위의 다솜학교를 설립하는 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학교를 포기한 다문화가정 청소년은 자칫 마약에 빠지거나 폭력조직에 들어갈 수 있다. 다솜학교 설립은 시급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컨트롤타워 부재 문제에 대해서는 “총리실의 다문화정책 관련 기능을 강화해 정책을 집행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