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없어지긴커녕 갈수록 노골화
교육 당국은 일부 교사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학부모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 이모 씨(41·여)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담임 여교사가 오후 10시에 예고 없이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웬 남자가 동행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이 씨에게 교사는 “결혼 날짜를 잡았다”며 남자를 인사시켰다.
○ 성의표시 방법을 고민
교육 관련 시민단체에는 최근 새 학기를 맞아 촌지와 불법 찬조금 때문에 고민하는 학부모의 상담 문의가 늘고 있다. 학년이 바뀌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성의 표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학부모는 “아들이 이번에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는데 덩치가 작아 괴롭힘을 당할까봐 걱정이다. 주위에서 담임교사에게 일단 인사를 해야 한다고 말해 액수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새 학기를 맞아 교사에게 상납하는 촌지 액수가 일반화돼 있을 정도다. 서울 강남 지역이 50만 원, 경기 분당 지역이 30만 원, 그 외 지역이 10만∼20만 원이다.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부희 상담실장도 “촌지뿐만 아니라 불법 찬조금 형태의 변형된 촌지 문화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개학 초기인 3∼5월에 상담 건수가 집중된다”고 전했다.
○ 학부모의 이기심도 문제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에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6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촌지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54.7%가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학부모의 이기심’이 근본 원인이라고 꼽았다. 교사의 윤리의식 부족이라는 지적은 20.3%로 나타났다.
교사도 잘못이지만 학부모도 반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사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적용되고, 고교입시에도 자기주도학습전형이 도입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교사 재량으로 작성하는 학교생활기록부가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교사의 입김도 그만큼 세졌다는 얘기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초등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는 당장 입시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칭찬이나 꾸중 한마디에 아이들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부모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 현장과 인식 차이 보이는 교육 당국
교육 현장에서는 촌지가 극성을 부리지만 당국은 “강력한 촌지 근절 대책으로 촌지는 대부분 사라졌다”며 소수의 문제 교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촌지 대신 불법 찬조금만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교육 당국의 인식이다.
‘명품백 촌지 교사’ 문제가 터진 경기도교육청 감사과에서도 “지난해 불법 찬조금 근절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관련 신고는 한 건도 없을 정도였다”며 “교사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있어 올해는 따로 감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새 학기를 맞아 불법찬조금 예방을 위해 각급 학교를 방문 지도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지도 계획으로는 촌지 극성을 막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