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말을 들어봉께(들어보니) 고향도 같은 모양인디(모양인데) 왜 이러는 거여.”
지난해 11월 초 친구와 함께 낮잠을 자고 있던 김모 씨(24·여) 집에 30대 남자가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했다. 성범죄로 10년간 복역한 뒤 3개월 전 출소한 이모 씨(33)가 서울 광진구 화양동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김 씨 집 문이 열려 있자 들어가 범행을 저지르려 한 것. 김 씨는 이 씨가 망치를 들이대며 위협하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 씨의 호남 사투리를 듣고 이내 고향 말로 대화를 유도했다. 김 씨는 광주, 이 씨는 전남 순천이 고향이다.
말문이 트인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동안 구수한 사투리로 서로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씨는 “서울 모 명문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계모 밑에서 학대를 받고 자라 정에 굶주렸다”며 주저리주저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한동안 이 씨의 하소연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던 김 씨는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울면서 “그동안 순결을 지켜왔다”고 호소했다. 결국 이 씨는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라”고 한 뒤 빼앗은 팔찌마저 돌려주고 집을 나갔다. 경찰은 “당황해서 소리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발휘한 기지로 큰 위험을 피했다”고 말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