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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되고 ‘한잔’은 안된다? 들쭉날쭉 가요심의

입력 | 2011-02-10 03:00:00



《“‘소주 한잔 어때요’는 되고 ‘술 한잔 벗 삼아’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최근 음반 제작자와 뮤지션들의 트위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던 록밴드 ‘보드카레인’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노래 ‘심야식당’이 지난달 28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 고시된 것이 계기였다. ‘지금 내게 간절한 것은 얼음보다 차가운 한 모금의 맥주’ ‘나는 오늘 마셔야겠어’라는 가사가 문제가 됐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국내에서 발표되는 음반에 대해 술이나 마약 같은 유해약물과 관련된 표현이 노랫말에 들어 있는지를 가려 청소년 유해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뮤지션들이 문제 삼는 부분은 ‘심의가 들쑥날쑥해 운 없는 가수만 당한다’는 것.

술과 관련된 표현을 예로 들면 최근 노래에 등장한 가사 중 △‘잊고 싶어 술을 마시고’(이승기 ‘사랑이 술을 가르쳐’) △‘오늘도 술에 취해 있겠죠’(포맨 ‘미친듯해’) △‘술김에 난 입을 맞춰버렸어’(은지원 ‘술김에…’) 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19금(禁)’ 판정을 받았다.

반면 ‘심야식당’보다 먼저 발표된 노래들 가운데 문제가 될 만한 가사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음반제작자들과 뮤지션들은 지적했다. 걸그룹 ‘소녀시대’가 2009년 발표한 ‘여자친구’엔 ‘쓰고 독한 술을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걸’이라는 대목이 나오고, 보이그룹 ‘2PM’의 2008년 발표작 ‘10점 만점에 10점’엔 ‘그녀가 술이면 취해 버리련다’는 대목이 있지만 청소년 유해 매체물 판정을 받지 않았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은 청소년보호위의 자문단 격인 음반심의위원회가 먼저 검토한 뒤 청소년보호위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청소년보호법 심의기준에 따라 결정하는데 유해 매체물로 결정되면 음반에 ‘19세 미만 청취 불가’ 표시를 해 이 음반이나 파일을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다.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틀 수도 없다. 음반업계 관계자들은 “공연할 때 청소년들의 입장을 제한해야 하고 음반도 팔지 못해 타격을 입는다. 음악의 색깔이나 성향에 상관없이 가수에게 건전하지 못한 이미지가 덧입혀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부 측은 “음반이 나온 뒤 사후 심의하는 형태인데 음반 발매량이 워낙 많다 보니 완벽하게 모니터링하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유독 가요에 등장하는 표현에만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형평에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접하는 TV 드라마와 광고에 술이 자주 등장하고 각종 문학작품에서도 술과 관련된 묘사를 특별한 규제 없이 접할 수 있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청소년 정서보호를 위해 과격한 표현이나 욕설 등은 당연히 유해 매체물 판정을 해야 하고, 청소년에게 술을 권할 수 없다는 정부 의견에도 동의한다”면서도 “유독 음반만 규제하도록 한 현행제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