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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만화]인기웹툰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연재 끝낸 김규삼 씨

입력 | 2011-02-10 03:00:00

“제 만화 캐릭터엔 승자도 패자도 없어요”




‘정글고’의 캐릭터들


작품 중 자신을 지칭하는 ‘Q3’라는 캐릭터를 꽃미남 한류스타로 그렸던 김규삼 작가. 그는 “덕분에 나를 미남으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며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달려드는 셈이어서 만화에 더 등장시킬 기분이 안 났다”고 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웹툰 독자의 최근 화제는 단연 ‘정글고’다. 김규삼 작가(36)가 2006년 1월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해 올해 1월 말 끝낼 때까지 15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이다. 공식 제목은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연재 종료를 아쉬워하는 댓글이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입시 경쟁, 학원 비리 같은 사회 풍자적 소재를 다루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할 말은 다 하면서 결국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김 작가의 블랙유머 덕분이다. 그런 결과를 이끌어낸 주인공들이 바로 특유의 캐릭터다. 학생들에게 거액의 상담료를 요구하는 상담 교사, ‘학교는 학생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며 비리와 전횡을 일삼는 이사장…. ‘악역’일수록 더욱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코믹스러움을 극대화한다.

그런 캐릭터들의 중심에 주인공 ‘불사조’가 있다. 새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전교 1등’이다. 만화에서 5년이나 고등학교를 다녀야 했던 불사조는 자신을 그려준 김 작가에게 묻고 싶은 게 없었을까. 8일 경기 시흥시 자택에서 김 작가를 만나 불사조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졌다.

불사조=선생님 때문에 제 정체성이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자꾸 닭이라고 하잖아요.

김규삼=이름 자체가 불사조잖아요. 당연히 닭이 아니죠. 머리에 난 붉은 벼슬도 봉황 그림을 보고 옮겨 그린 거예요. 색깔 배치 때문에 그렇게 많이들 오해를 하시는 것 같지만, 분명히 당신은 닭이 아닙니다.

불=어차피 5년이나 학교를 다녔으면 더 다녀도 됩니다. 제 팬들도 저를 더 보고 싶어 하고요. 그런데 왜 학교를 떠나라고 한 건가요.

김=5년이 지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선과 악이 칼로 자르듯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작품을 해나가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 자기검열도 하게 되고 만화의 ‘날’이 무뎌졌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죠. 계약이 끝나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연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불=제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끝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등학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결국 ‘어느 대학에 갔느냐’잖아요.

김=그 점을 많이 고민했어요. 예전에 생각했던 결말은 주인공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든지 해서 각자의 길을 걷다가 학교를 찾아와 술 한잔하며 추억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을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서열의식이 강하더라고요. 단계에 따라 스스로를 승리자, 패배자로 나눌 정도로 말입니다. 불사조 군을 포함한 내 캐릭터들이 그렇게 ‘위너’와 ‘루저’로 나뉘는 것이 싫었어요.

불=욕을 먹어 마땅한 이사장 정안봉이 어쩌면 저보다도 인기가 많다는 점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동글동글한 외모에 ‘모차르트 머리’를 한 귀여운 인물로 그려놓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아닌가요.

김=우연히 본 프랑스 궁전 사진 속 석고상에서 따온 캐릭터예요. 당시 권위자였던 그 석고상의 인물이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운 ‘모차르트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던 거죠.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면, 명왕성은 ‘권법소년 한주먹’이라는 옛날 만화 주인공 헤어스타일을 생각나는 대로 그린 것이에요. 공부를 싸움처럼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한 만화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다 실패하자 만화를 그만둘 생각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네이버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다. 사회풍자 만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에 생각 끝에 ‘약육강식’을 교훈으로 하는 ‘정글고’를 만들어냈다.

불=입시제도에 관한 얘기든, 다른 소재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여기는 독자가 많습니다.

김=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이 와서 교육 전문가에게나 물어볼 법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제 만화도 단지 독자들이 즐겁게 읽고 나중에 가끔씩 기억나는 작품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불=작품 속에서 제가 읽는 책은 늘 ‘모라토리엄의 한국경제와 동아시아를 노리는 유대자본’ 어쩌고 하는 책입니다. 그런 책 제목을 비롯해 작품의 소재는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김=공상을 많이 합니다. 도서관에서 서가 사이를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쑥쑥 뽑아서 봅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가 있으면 메모를 합니다.

불=이제 저는 떠납니다.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릴 예정입니까.

김=‘북두신권’ 같은 만화를 평소에 즐겨 봤어요. 그래서 액션에 대한 향수가 항상 있습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시작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돈을 내고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독자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면 작가로서 엄청 뿌듯할 것 같습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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