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숭어
푸하하하! 숭어는 점프왕이다. 웬만한 그물은 단숨에 뛰어넘는다. 시도 때도 없이 풀쩍풀쩍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꼬리로 물을 힘차게 내려치며 수직으로 불끈 솟아오른다. 푸른 하늘에 주욱 흰 금을 내며 치솟는 우주 로켓이다. ‘로켓숭어’는 어느 순간 속도 제로가 된다. 그 정점에서 잠시 대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다. 숭어에게 그 순간은 바로 무아지경이다. 화엄세상이다. 아수라세상과의 ‘짧고 찬란한 결별’이다.
숭어의 점프는 바닷물 속에서의 수평운동 에너지가 한순간 공중의 수직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 공중에 수직으로 서는 순간, 숭어는 해탈을 맛본다. 그것은 파천황(破天荒)이다. 짜릿함이다. 숭어가 정점을 찍고 내려올 때의 몸짓은 체조선수나 똑같다. 몸을 한 번 용처럼 꿈틀 비틀며, 180도로 빙그르르 머리가 아래쪽으로 향한다. “철퍼덕∼첨벙!” 다이빙선수처럼 머리부터 물속에 들어간다. 꼬리의 물보라가 요란하다. 입수(入水)가 빵점이다.
‘몸은 둥글고 검으며 눈이 작고 노란빛을 띤다. 성질이 의심이 많아 화를 피할 때 날렵하다.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으뜸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세상은 혁명을 해도/나는 찬 소주 한 병에다/숭어회 한 접시를 주문하는 거라/밤바다가, 뒤척이며, 자꾸 내 옆에 앉고 싶어 하면/나는 그날 밤바다의 애인이 될 수도 있을거라’ <안도현의 ‘숭어회 한 접시’에서>
숭어는 맛있다. 그중에서도 겨울숭어가 으뜸이다. 기름이 자르르 올랐다. 날씨가 찰수록 육질이 차지고 제 맛이 난다. 오죽하면 ‘겨울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개흙만 훔쳐 먹어도 맛있다’고 했을까. 점프를 잘해서일까. 쫄깃쫄깃 달보드레 고소하다. 민물과 썰물이 만나는 갯벌에서 잡힌 것이 최고다. 뱃살 부위가 가장 맛있다. 큼직한 머리는 살이 없다. ‘고양이가 숭어 머리를 훔쳐 갔다가 하품만 했다’던가. 겨울숭어는 많이 잡혀서 값이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큰 차이가 없다.
숭어는 뻘 속의 미네랄을 먹고 산다. 10∼2월에 알을 낳는다. 산란을 위해 얕은 바다로 몰려든다. 산란기 겨울엔 먹이활동을 중단한다. 냄새와 내장의 쓴맛이 사라진다. 겨울숭어는 아둔하다. 가을부터 기름기가 올라 눈꺼풀까지 백태가 낀다. 눈이 어두워 그물에 잘 걸린다. 낚시 미끼도 덥석덥석 잘 문다.
숭어는 참숭어와 가숭어(개숭어)가 있다. 가숭어는 참숭어보다 크다. 1m가 넘는 것은 거의 가숭어라고 보면 된다. 맛이 덜하다. 참숭어는 머리가 날씬하고, 꼬리지느러미가 ‘<’형으로 깊게 파여 있다. 눈동자 주위에 노란 둥근 테가 있다. 가숭어는 꼬리지느러미가 밋밋하고, 크기도 참숭어 보다 크다. 눈동자 주위에 노란 테도 없다. 보리숭어는 보리 팰 때 잡히는 가숭어를 말한다. 가숭어는 동해안이나 남해안 바위가 많은 곳에서 많이 잡힌다. 여름철 거제 통영 여수 순천 강진 완도 해남의 남해안 갯바위에서 낚는 고기가 주로 보리숭어(가숭어)다. 가숭어는 봄여름에 주로 먹는다.
숭어는 예로부터 약재로도 쓰였다. ‘숭어를 먹으면 비장에 좋고 알 말린 것을 건란이라 하여 진미로 삼는다. 숭어는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에 어울린다.’(서유구의 ‘난호어목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에 살이 붙고 튼튼해진다.’(동의보감)
숭어는 30∼60cm 정도가 가장 맛있다. 길이 10cm 이하는 모치(숭어 새끼)로 부른다.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거나 묵은 지에 싸서 먹는다. 복사꽃 빛 감도는 숭어회도 묵은 지에 싸서 먹으면 맛있다. 두툼한 회에 들큼한 묵은 지가 어우러져 황홀하다. 잇몸에 뭉툭하게 닿는 식감이 야릇하다.
살짝 데친 껍질도 고소하고 쫄깃하다. ‘숭어껍질에 밥 싸먹다가 집 판다’는 말까지 있다. 숭어 위는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고, 숭어알은 최고 별식이자 최고급 안줏감이다. 숭어알은 한배에 290만∼720만 개쯤 낳는다. 어란은 숭어알을 그늘에서 참기름을 발라가며 수십 번 말린 것이다. 예리한 칼을 불에 달구어 아주 얇게 썬 뒤, 앞니로 조근조근 깨물어 먹어야 제 맛이다.
아 참,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 ‘송어(Die Forelle)’는 어쩌다가 그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숭어’로 둔갑했을까. 왜 교과서에 송어가 아닌 숭어로 나올까? 송어는 찬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이다. 숭어하고는 전혀 다르다. 슈베르트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다. 송어는 많아도 숭어는 없다. 모를 일이다.
사실 숭어는 겁이 많다. 새가슴이다. 너무 놀라 깜짝깜짝 뛰어오를 뿐이다. 그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망둥이도 따라서 뛴다’는 것이다. 심지어 숭어가 뛰니까 전라도 빗자루도 따라 뛴다. 숭어는 거기에 또 놀란다. 다시 뛰어오른다. ‘하늘에 칼금’을 죽죽 낸다. 부욱! ‘적막의 치맛자락을 찢는’다. 그것도 길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숭어는 억울하다.
‘뛰어 오르며 숭어는/바다가 차갑게 펼쳐놓은 적막의 치맛자락을 찢어보자는 것인가/저렇게 숭엄한 하늘의 구름장과 노을에다/수직의 칼금이라도 내보겠다는 것인가//보이지 않는 바다의 뱃속은/이 세상처럼 짜고, 끓는 찌개냄비처럼 뜨거울 수도 있겠다//팽팽하고 멀리까지 뻗어 눈에 가물가물해야 길인가/숭어가 뛰어오르는 저,/찰나의 한순간도 찬란하고 서늘한 길이 아닌가’ <안도현 ‘숭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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