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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포화속 가평고 설립 ‘2달러의 기적’

입력 | 2011-02-11 03:00:00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10일 오전 경기 가평군 가평읍 대곡리 가평고에 도착한 알 포펠 씨(79·미국)가 감격에 겨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함께 온 듀엔 왈리 씨(82·미국)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59년 전 자신들의 정성과 땀으로 세운 학교에서 활짝 웃는 학생들을 보고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포펠 씨와 왈리 씨는 6·25전쟁 때 미국 육군 40사단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1952년 중부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40사단 장병 1만5000여 명은 잠시 가평지역에 머물렀다. 이때 조지프 클렐런드 사단장의 눈에 누더기 천막을 치고 공부하던 학생 150여 명이 들어왔다. 클렐런드 사단장은 부대로 돌아와 장병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학교 신축을 위한 성금 모금을 제의했다. 장병들은 흔쾌히 동의하고 1인당 2달러 이상의 돈을 냈다.

공병 및 수송부대가 학교 공사에 투입됐다. 학생들도 직접 벽돌을 나르며 장병들을 도왔다. 이런 노력 끝에 그해 말 교실 10개와 강당 1개를 갖춘 학교 건물이 완공됐다. 문제는 학교 이름이었다. 주민과 학생들은 클렐런드 사단장의 이름을 붙이길 원했다. 그러나 클렐런드 사단장은 40사단 첫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저 하사의 이름을 제안해 절충 끝에 1953년 1월 ‘가이사중학교’가 설립됐다. 당시 주민들이 ‘카이저’를 한국식으로 부른 이름이 바로 ‘가이사’였다.

이듬해에는 ‘가이사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두 학교는 1972년 현재의 가평중학교와 가평고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맺어진 미군과 가평고의 인연은 1987년 새롭게 시작됐다. 퇴임한 클렐런드 사단장이 부인과 함께 가평을 다시 찾아 장학금을 전달했다. 클렐런드 사단장이 세상을 뜬 뒤에는 부인이 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장학금으로 지원했다. 부인이 숨진 뒤에는 40사단이 ‘가이사 성금함’을 만들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가평고는 이들의 장학금을 기금 형식으로 적립해 1990년부터 신입생과 졸업생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40사단과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 2월 ‘가이사 역사관’을 만들어 당시 물건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졸업식에 당시 참전용사였던 포펠 씨와 왈리 씨, 스콧 존슨 현 40사단장을 초청했다. 이들은 한국과 가평의 달라진 모습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감격스러워했다. 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직접 수여하고 역사관을 찾아 옛 추억을 되새겼다. 한병헌 가평고 교장(56)은 “가평고는 한미동맹의 상징”이라며 “여건이 되는 한 참전용사들과의 교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평=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