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문제에는 조건을 제시한 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정답이 무엇인지 골라내는 문제가 자주 출제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출제하기도 쉬울뿐더러 문제 속 ‘함정’을 만들기 쉽기 때문. 수험생들은 애매하거나 그럴 듯한 조건이 나오면 큰 고민 없이 문제를 풀어 쉽게 실수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는 조건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비유법 등 표현기법과 연관된 조건은 쉬운 수준에 해당한다. 문제 상황, 상징성, 내용 파악, 정서 파악 등은 다소 어려운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를 풀 때는 가장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부터 어떤 답지에 포함되는지 점검해 나가는 방법과 쉬운 조건부터 차례대로 점검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상위권 학생, 후자는 중하위권 학생에게 적절한 풀이법이다. 실제로 문제를 보자.
답지 ①번을 보자. ‘조상의 아름다운 미소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라는 표현과 ‘마음을 담은 미소’가 필요하다는 진술이 문제 상황을 반영한다. 또한 미소를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에 비유하고 있다. 보기의 조건을 모두 충족한 것. 답지 ②번은 ‘미소를 잃어 가는 우리 사회’라는 표현에 문제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으나 비유적 표현이 쓰이지 않았다. 답지 ③번의 경우 미소를 퍼져 가는 ‘햇살’에 비유하지만 문제 상황은 없다. 답지 ④번은 ‘바쁜 일상 속에서 미소를 잃고 사는 우리들’이라는 표현에서 문제 상황이 어느 정도 반영돼 있지만 비유적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 답지 ⑤번은 문제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답은 ①번.
출제자는 <보기> 또는 답지에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제시된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는 답지에 흔들려서 성급히 답으로 골라선 안 된다. 제시된 조건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진 조건인 ‘문제 상황 반영’과 ‘비유적 표현 사용’에 번호를 붙이거나 각 조건의 핵심어에 밑줄을 그어 표시한 뒤 각각의 답지에 이 조건들이 모두 반영됐는지 따져가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문제는 변형된 조건 부과형 문제다. 정답은 ⑤번. ⑤번을 보면 사이버 공간이 자유 공간으로 환영받는 현상을 제시한 뒤, 사이버 공간의 무제한적 자유 때문에 비윤리적 행동이 나타난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다음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논제인 ‘사이버 윤리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답률은 46%.
남은 답지들은 논제에서 벗어나 있거나 내용 전개 방법을 잘못 적용했다. 다른 답지를 분석해보자. ①번 답지는 현상-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예-현상이 생겨난 이유, ②번 답지는 현상-현상이 생겨난 이유-논제 제시, ③번 답지는 현상-현상의 구체적인 제시-논제 제시, ④번 답지는 문제점-문제의 이유-논제 제시로 구성됐다.
특히 ②번이 매력적인 오답이었다. 약 21%의 반응률을 보였다. ②번을 보면 ‘사이버 윤리 규범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면서 현상을 제시한 다음 이어질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나타나기 때문이다’가 제시됐다. 끝으로 ‘그렇다면 사이버 윤리 규범은 어떤 내용이 되어야 하는가?’라며 논제도 제시하고 있다. 보기에 나와 있는 ‘현상 제시→문제점 이끌어내기→논제 제시하기’의 세 가지 전개 방법을 숙지한 후 답지를 본 학생들은 답지 ②번에서 드러나는 ‘현상’과 내용에 이어지는 ‘적절한 내용’ ‘논제 제시’를 보면서 서술이 자연스럽다고 느꼈을 것이다. 중간단계인 ‘문제점 이끌어내기’가 빠져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②번을 정답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2011학년도 수능에서도 이런 유형의 문제가 출제됐다. 문제는 쉬웠다. <보기>에서 제시된 조건은 사실상 세 가지다. 첫 번째 조건은 ‘폐휴대전화의 양면성 제시’, 두 번째 조건이 ‘양면성을 대구의 형식으로 표현’, 세 번째 조건이 ‘활유법을 활용하여 호소력을 높일 것’이다.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해 홍보 문구를 작성해야 하는 것. 정답은 ①번이다. ‘자원 활용은 두 배로, 환경오염은 반으로’에서 폐휴대전화의 양면성을 대구 형식으로 표현했다. ‘지구가 아프지 않게’에서 활유의 방식이 드러난다. 대구나 활유는 찾기 쉬운 조건이다. ②, ③, ④번은 대구의 형식을 쓰지 않고 있으며 ⑤번은 대구의 형식으로 표현돼 있으나 활유의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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