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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회]꼬리에 꼬리 무는 ‘이야기 미로’에 갇히다

입력 | 2011-02-12 03:00:00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지음 384쪽·1만3000원·자음과모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책장을 넘길수록 일차방정식 같았던 얘기는 고차방정식으로 난해하게 꼬인다. 현실과 꿈, 소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뒤섞이며 변주를 이룬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개운한 느낌을 갖기도 힘들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으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처럼. 끝난 것 같던 얘기는 끈질기게 꿈틀거리고 이어지며 무한 확장한다.

작품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한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말이죠. 내용이 끊임없이 변하는 책이에요. 누군가가 책 속에 자신을 유폐시켜 놓고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거죠.”

지난해 9월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을 통해 이야기의 변주, 확장, 덧붙이기 등의 솜씨를 뽐낸 작가는 이번 첫 장편에서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계간지 ‘자음과 모음’에 연재됐던 중편 4편을 모아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픽스업’ 소설을 촘촘히 짜냈다.

네 개의 중편이 얽히고설켜 한 편의 장편소설로 만들어진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출구가 없는 미로같다. 현실과 환상, 소설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이야기는 무한 확장한다.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여러 변주 중 하나를 끄집어 내보자. 첫 번째 중편 ‘여섯 번째 꿈’에 나오는 여배우 지망생 ‘유혈낭자’는 긴 생머리의 20대 여성. 연쇄살인마 관련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 나갔다가 다른 회원들처럼 산속에서 고립되고 의문의 살인을 당하며 스치듯 퇴장한다. 하지만 두 번째 중편 ‘복수의 공식’에선 샛강모텔 314호에서 킬러와 정사 후 대화를 나누는 무명 여배우와 오버랩되고, 간질을 앓는 쌍둥이 동생을 두었던 여자와도 겹친다. 샛강모텔 314호는 세 번째 중편 ‘π(파이)’에서 여성이 피살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네 번째 중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 여배우 ‘미미’는 자신을 ‘스토킹’했던 사내를 살해한다. 이들 여성은 동일인인 듯하면서도 다른 인물 같다.

“낯선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소설이 닫혀 있다가 다시 뻗어나가고 계속 반복을 하면서 변증법처럼 확장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네 편의 중편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중편 안에서도 이야기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로 시작하는 중편 π는 현실과 환상, 소설 안과 밖이 한없이 이어지는 원주율처럼 확장된다. 일본 책 번역가 M은 묘령의 여인을 술집에서 만나고 그녀에게서 ‘하루의 얘기’를 밤마다 듣는다. 하루가 우연히 베란다에서 투신하는 안경사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샛강모텔 314호로 찾아가고 돌아와 베란다에서 떨어지며 다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제3자를 본다.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는 이야기는 M이 번역하는 일본 소설(첫 번째 중편 내용이다)과 하루가 겪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착각이 첨가되며 중첩의 극한을 달린다. 하루가 정신병자임을 자각할 때쯤 다시 일침을 날린다. “여기 병원도 어딘가의 다른 현실에서 조각들을 가져다 만든 퍼즐일지 모른다”고. 무엇을 규정하고 이해하기보다는 그 복잡함과 비정형성 자체를 즐기는 게 이 소설의 올바른 독법인 듯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작가는 어떻게 감았을까. “시간이 많이 걸렸죠. 하하. 집필 전에는 네 중편의 구체적인 틀만 잡았고, 작은 부분들은 쓰면서 첨가했어요.” 미로 같은 소설을 푸는 열쇠는 있을까. “‘미미’, 마술사 등이 중심인물이니 이들에 집중해 읽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