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군부 압력에 ‘안전지대’로 피신… 결국 백기
하지만 그는 시위대에 의한 강제체포 등의 위험이 적은 휴양지에서 사퇴를 발표함으로써 신변안전을 도모하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휴양지까지 그를 따라간 사미 에난 육군참모총장이 막판에 그를 설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물 대통령’ 자리 포기
하지만 이런 정도의 유화책으로는 시위대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최측근으로 분류돼 이미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
결국 그는 상대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군부에 실권을 이양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실제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 성명 발표 전부터 “군에 모든 실권을 내준다”는 합의가 양자 간에 이뤄졌다는 설이 나돌았다.
○ 사실상 군부 과도기 통치 시대
앞으로 9월 대선까지 이어질 군부의 사실상 이집트 통치의 관건은 시위대의 반응에 달려있다. 이집트 국민들은 1950년대부터 이어진 군사정부에 대해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어 무바라크 사임의 감격이 사그라들 경우 시위의 공세가 군부를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이날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 급속히 퍼지자 카이로에 모인 시위대는 “우리는 군사정권이 아닌 민간정권을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특히 30년간 독재를 하면서 폭정과 부패를 저지른 무바라크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올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그는 재임 중 수천 명의 국민을 혐의 없이 구금하거나 고문해 왔고 부정축재로 쌓아올린 일가의 재산도 7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부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하면서 신변 안전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커 이 대목에서도 시위대와 군부간의 갈등이 예상된다.
▼ 무바라크가 간 곳은 ▼
겨울관저 있는 샤름 엘셰이크… 경호 쉬워 자주 이용
시나이 반도 남단에 있는 샤름 엘셰이크는 카이로에서 차로 7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유럽 등지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세계 정상들을 초청하는 국제회의도 자주 열려 경호나 안전에서도 세계 최상급 장소로 꼽힌다. 이 때문에 중동 지역 등과 관련한 각종 평화회의가 이곳에서 자주 열려 ‘평화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2005년 7월에는 이곳에서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발테러 사건이 일어나 88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카이로를 떠났다는 보도는 10일부터 아랍권 언론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해 다음 날 서방언론 전체로 확대됐다. 10일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를 떠났으며 이날 국영TV로 방송된 대국민 연설도 사전녹화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아랍권 TV채널인 알아라비야는 다음 날인 11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가족들과 함께 카이로 외곽에 있는 공군기지를 출발해 샤름 엘셰이크로 갔으며 이들이 도착한 것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