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부모-무심한 이웃이 죽음 내몰아
“죽고 나서야 안전해지다” 어머니와 동거남에게 학대당하다 사망한 피터 코널리(왼쪽). 오른쪽은 영국 헤링게이에 세워진 베이비P의 추모비. 생몰연도 밑에 쓰인 ‘마침내 안전해지다(Safe at last)’라는 글귀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면서 아버지가 세 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만든 이 일은 2007년 영국을 경악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던 ‘베이비P’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런던 근교 헤링게이에서 생후 17개월 된 피터 코널리 군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병원에 실려와 사망한 이 사건은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는…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다세대주택 반지하 쪽방. 김모 군은 이곳에서 아버지에게 맞아 숨진 뒤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졌다. 연합뉴스
○ 영국 헤링게이에서는…
부모의 비정함과 이웃의 무관심은 ‘베이비P’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피터의 얼굴과 가슴에서 멍을 발견한 때는 생후 9개월째인 2006년 12월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학대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며 치료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뒤 피터는 단기간 부모로부터 격리 명령을 받기도 했지만 곧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어머니와 동거남은 아이의 상처를 초콜릿을 칠해 가리는 식으로 감시를 피했다.
피터가 사망하기 두 달 전인 2007년 6월, 사회복지사가 아이의 상처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한 달여의 조사를 거친 특별위원회는 7월 25일 ‘법적 절차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유보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피터가 부모와 사는 것을 용인했다.
결국 8월 1일 피터는 만신창이가 돼 병원에 실려가 이틀 만에 숨졌다. 등뼈와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있었고 부검 결과 위장에서는 맞을 때 삼킨 부러진 이가 나왔다.
수사 보고서를 제출한 경찰은 “(특별위원회가) 학대사건 자체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하기보다는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을 귀찮아하고 비난하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피터의 몸에서 멍을 발견했지만 신고하지 않았던 의사는 자격이 정지됐다. 특별위원회 담당 국장을 비롯해 관계자가 줄줄이 해임됐다. 폭력을 행사한 동거남에게는 징역 12년, 어머니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사회복지사는 감독 가정을 방문할 때 아이에게 어떤 음식을 주는지 냉장고를 확인하고 애완동물의 건강까지 검사해 가족의 배려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 지역 교육청이 나서 아동보호 시스템을 불시에 점검하라는 지시도 나왔다.
○ 아동학대, 사회의 책임이 우선
세 살배기 아동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아동보호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이가 매일 맞아서 울고, 멍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도 이웃이나 보육시설 교사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알리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기관이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사례 4017건 중 친부모나 계부모에 의한 학대가 3405건으로 84.7%를 차지했다. 가해자를 조부모나 외조부모 등 가족 전체로 확대하면 90.7%(3645건)에 이른다.
안동현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한양대 정신과 교수)은 “학대받은 아이는 학대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부모를 교육하고 주변 신고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양육 방법을 모르는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아동을 위해서는 문제가 심한 부모의 경우 국가와 사회가 나서 아이와 격리시키는 극약 처방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