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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이집트 시대]軍 “새 대통령 선출때까지만 통치”… 권력이양 속도 낼까

입력 | 2011-02-14 03:00:00


“軍 중립에 감사” 꽃다발 12일 이집트 여성이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지켜 온 군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큼직한 흰 꽃을 선물하고 있다. 이집트군은 18일간의 반정부 시위 기간에 중립을 지켰으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결정적인 하야 압력을 넣었다. 카이로=AP 연합뉴스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가 12일부터 과도군정을 맡으면서 ‘새 이집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 군이 ‘격변기’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 군부에 달렸다


군 최고위는 선거에 의한 새 민간정부 선출을 목표로 평화적 권력 이양을 돕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모흐센 팡가리 최고위 대변인은 이날 국영 TV를 통해 “평화롭고 자유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정부로 권력이 이양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등 이집트가 국제사회와 맺은 모든 협정도 존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군이 직접 통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최고위는 “앞으로 발표할 성명에 위원회가 스스로 정통성을 지닌 정부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내용도 넣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근본적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를 알고 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며 시위에 참여한 국민을 다독였다.

○ 시위대 “군부 견제하겠다”


그러나 군이 ‘이집트의 수호신’을 자임하는 자신 있는 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변화’보다는 ‘체제 유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무바라크 체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시위대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군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의 폭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동시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물러났다”며 독재자를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군의 장기 집권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시위대의 일부는 “군부가 만족할 만한 후속 조치를 발표할 때까지 광장에 계속 남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무바라크 퇴진’이라는 역사적인 혁명을 이뤄냈지만 군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반정부 시위대와 야권 일부에서는 군최고위가 군정이 아니라 민간에 의한 과도정부 구성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도 격변기 이집트의 변수 가운데 하나다. 그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시위 도중 부통령에 임명된 대표적인 구체제 인사지만 최고위와 정국 안정 방안을 모색할 합법적인 파트너이기도 하다. 부통령에 임명된 뒤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지웠고 특히 미국의 신뢰가 높다. 그러나 최고위가 13일 의회를 해산함에 따라 사실상 구체제의 대표자로서의 동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정국을 장악한 최고위가 술레이만 부통령을 배제했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더욱이 일부 야권 세력과 반정부 시위대가 현 정권 인사들의 완전 퇴진을 촉구하고 있어 그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른다.

○ 여전히 불투명한 정치 일정


군 최고위는 13일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무바라크 30년 독재 체제를 지탱해 온 기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 헌법을 마련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운영의 전권을 장악한 최고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앞으로 6개월 동안 또는 정상적인 선거가 실시돼 새 대통령과 의회가 선출될 때까지 과도기에만 집권하겠다고 선언했다.

중동정치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반정부 시위대가 성취한 ‘혁명’에 어울릴 수 있도록 기존 헌법을 무효화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구체적인 정치개혁 일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집트가 최상의 정치 환경이라면 민간이 주도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새 헌법과 정당 체제를 통해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집트는 독재 기간 동안 정당정치 체제가 유명무실해져 정치 환경을 성숙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야권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민주적인 선거를 준비하려면 1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시애틀타임스는 “정당정치의 환경이 일천한 상황이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고위가 움직인 만큼 그 범위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군부에 정치권력을 너무 오래 맡겨두면 무바라크 체제와는 또 다른 권위주위 체제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 시위를 주도했던 인사들의 생각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