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계약… 집도 안보고 계약부터반토막 계약… 임차기간 1년으로 줄여
요즘 국내 부동산계의 핫이슈는 전세난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집을 사는 대신에 전세로 눌러 앉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전세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렇게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어지니 건설사들도 신규 분양 시기를 늦추게 되고, 새로 들어갈 주택 자체가 적어져 전세난이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전세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줄어드니 전세금이 오를 수밖에 없겠죠.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서울지역(111만5654가구)의 전세 시가총액(전세 보증금의 합계)은 최근 2년(2009년 1월∼2011년 1월) 새 18.5% 올라 40조831억5197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부동산 관련 신조어들은 대부분 이런 전세난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 반전세·반월세
반전세란 용어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권에서 비롯된 전세난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조민이 부동산1번지 팀장은 “지난해 하반기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등 서울 잠실 일대 대단지 재건축아파트들이 입주 2년차가 되면서 전세금이 치솟았고 기존 세입자들이 오른 만큼의 금액을 월세로 낸 것이 반전세 트렌드의 시초”라고 설명합니다. 나인성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약 2년 전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의 래미안 퍼스티지와 자이 아파트가 반전세 트렌드를 확대한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반포 자이의 3.3m²당 평균 전세금은 2009년 2월 1036만8000원에서 올 2월 1908만3000원으로 치솟았습니다.
반전세는 월세로 가는 과도기적 트렌드라고 해석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전세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은행 이자가 높았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주택금융이나 대출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전세를 끼고 집을 사면 초기자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내 집을 보유할 수 있었죠. 아무튼 전세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임대차 계약 구조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집주인 시각에서 전세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월세를 놓으면 상대적으로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전세보다 월세로 전환하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김규정 부동산114 본부장은 “시중에 ‘1부(1%) 이자라는 원칙이 있는데 전세금 1억 원을 월세로 돌리면 통상 월 100만 원을 받는다는 것으로 연간 12%의 수익률을 낸다는 뜻”이라며 “시중 예금이자가 연 4%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 정도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집주인들에게는 큰 매력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 전세난민에 ‘묻지 마 계약’까지?
‘묻지 마 계약’은 월세를 끼지 않은 전세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셋집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 중개업소에 미리 전화로 전세 물건을 찍어 놓거나 대기자로 예약을 올리는 ‘전셋집 사전 예약제’, 임차 계약을 2년에서 1년으로 줄인 ‘반 토막 단기 계약’, 집이 팔리면 전세 계약을 끝내는 ‘매매조건부 전세’란 신조어도 탄생했습니다. 신학기를 앞둔 서울지역 대학가에서는 6개월∼1년 치 하숙비를 현금으로 미리 받는 ‘일시불 하숙비’가 등장했다고 하네요.
전세난이 확산되자 정부는 지난달 13일과 이달 11일 연이어 전월세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시장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전세난민’ ‘전세난’ ‘묻지 마 계약’…. 가장 편해야 할 삶의 휴식 공간인 집을 놓고 이런 전투적인 단어를 사용하게 되다니 그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