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경제성장률 5%, 소비자물가상승률 3%를 목표로 제시한 뒤 정부의 물가 단속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달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소집해 “정부의 주요 생활필수품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불응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계통조사(제조 및 유통 단계별 조사), 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고 기업인들이 전했다. 대통령이 물가 문제를 직접 챙기자 정부 부처들이 세무조사를 무기로 기업을 위협하는 행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를 빼닮은 모습이다.
국세청은 직원의 조사권 남용을 막기 위해 조사사무 처리규정을 고쳐 지난달부터 시행 중이다. 매점매석이나 담합 등 법규 위반 업체라면 몰라도 정부 방침에 덜 협조했다고 세무조사 대상이 되는지 이현동 국세청장은 대답해야 한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 중에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경제 원칙을 흐트러뜨리고 조사권을 남용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알고 싶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도 정유업계 통신업계를 공격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해당 업계의 불공정 사례 같은 법규 위반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험악한 ‘말 폭탄’을 퍼붓기에 바쁘다. 정유업계에서는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유가 인하 여력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두 장관이 청와대에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경제 관료들의 현란한 수사에 속아서는 안 된다. 물가 목표가 지켜지더라도 담당 장관을 바로 칭찬할 게 아니라 어떤 정책으로 효과를 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생필품의 수급에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았는지, 비축물량제도 개선으로 시중 원자재 가격을 인하해 상품 가격까지 낮출 수 있었는지, 매점매석이나 중간상인의 폭리를 단속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업계 대표들을 모아놓고 겁이나 주는 장관들을 보면서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