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님 지고 달님 안고’대본★★★★ 연기★★★☆ 연출★★★ 무대★★★☆
서른여덟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아이 역을 소화하며 첫 주역 신고를 한 박성연 씨(뒤)와 영화 속 능청맞은 캐릭터에서 벗어나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살아 있는 시체 연기’의 진수를 펼쳐 보이는 황노인 역의 오달수 씨.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얼핏 논리적으로 비치는 이 비판에는 상징을 사실로 해석하는 오류가 숨어 있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신화를 자신이 발견한 강박관념의 대표적 임상사례로 간주해서가 아니다. 아비를 살해하고 어미와 잠자리를 같이 한 오이디푸스가 금기와 저주의 대명사가 된 이면에, 바로 그런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보편적 두려움이 작동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프로이트는 이를 통해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법칙이 인류의 성장과정에도 적용된다는 또 다른 가설을 열어젖힌다. 신화가 개체로서 인간이 겪게 되는 성장통을 인류 보편의 경험으로 추체험시켜주는 가설이다. 그에 따르면 아비 또는 왕에 대한 초석(礎石)적 살인을 다루는 신화들은 태곳적 인류가 공통으로 저지른 집단 죄의식의 산물이자 ‘같은 죄’의 반복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물이다.
배우 오달수 씨가 이끄는 단 신기루만화경의 창작극 ‘해님 지고 달님 안고’(동이향 작·성기웅 연출)는 신화적 연극이다. 그 신화의 근저에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같은 ‘살부(殺父)의 기억’이 꿈틀거린다. 깊은 산속에 부녀만 단둘이 살고 있다. 아내가 달아난 뒤 하나 남은 딸에게 집착하는 황노인(오달수)과 어미가 그립고 세상이 궁금한 그 철부지 딸(박성연)이다. 아비는 재 너머 세상으로 달아나려는 딸을 붙잡다가 급기야 눈을 멀게 만들고 딸은 그런 아비의 등에 업혀오다가 끝내 아비의 목을 조르고 만다.
이를 패륜이라 말할 수는 없다. 딸을 독점하려는 아비의 가부장적 욕망과 그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철부지 딸의 욕망이 신화적 공간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거기엔 눈먼 아비를 위해 어린 딸이 목숨을 바치는 ‘심청전’과 딸을 명창으로 만들기 위해 아비가 그 눈을 멀게 만드는 ‘서편제’처럼 딸/여성의 희생 위에 구축되는 한국적 서사에 대한 도발도 엿보인다. 어미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비를 살해하는 것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설정은 가부장적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새롭게 쓰인 현대적 신화다. 그것을 한국적 신화로 담아내려 한 점이 이 연극의 진짜 매력이다. 부녀가 빚어내는 비극의 주변에선 누린내 가득하고 까칠한 털북숭이에 성기가 도깨비방망이가 되는 도깨비들의 희극적인 난장(亂場)이 펼쳐진다. 여기에 깊은 늪에 살면서 보름달을 잡아먹으려는 용의 전설이 더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의 한국적 한(恨)이 바로 이 남성적 존재들에 의해 빚어진다는 점이다. 아내와 딸에게서 버림받는 황노인은 아이를 못 낳는다고 소박맞은 과부댁에게 이용만 당하는 빨간 도깨비(정재성)와 이어지고 다시 어린 계집을 잡아먹어야 보름달을 따먹을 수 있다는 용과 연결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2만5000원.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 02-762-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