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바텐더 대회 준우승…리츠칼튼 호텔 수석 바텐더 엄도환
집안 사정으로 시작…새벽까지 연구 몰두
홍삼 등 넣어 창작…“내 꿈은 칵테일 디너”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엄도환 매니저.
해마다 전 세계 수많은 바텐더 가운데 각 나라 대표를 선발해 한 자리에서 기량을 겨루는 무대가 있다.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 위스키의 본고장이라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비롯해 클래식 칵테일의 고향인 유럽과 미주, 일본 등의 유명 바텐더들이 참가한다. 지난해 7월 열린 2회 대회 총 참가자 수는 24개국 9000여 명.
그런데 칵테일과 바 문화에서 아직 변방이라고 생각했던 한 나라의 대표가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해 주최 측과 다른 참가자를 놀라게 했다. 현재 리츠칼튼 호텔의 ‘더 리츠 바’의 수석 바텐더인 엄도환(34) 씨의 이야기다.
● 10년 전 우연히 선택한 길
창작 칵테일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2008년부터. 선배 바텐더의 권유로 당시 대만에서 열린 ‘골드컵’이란 국제 바텐더 대회에 참가했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그동안 바텐더를 헛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 칵테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침 2009년, 2010년 걸쳐 열린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 한국 선발전이 좋은 자극과 경험이 됐다.
● 9000대 1의 경쟁을 이긴 원동력
‘엄도환 칵테일’의 큰 특징은 우선 칵테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의 과감한 채택이다.
한국 대회 우승 작품 ‘쉘 위 키스’는 위스키에 홍삼과 계란 흰자, 꿀을 섞어 달콤하고 쌉싸래하면서 여운이 긴 새로운 맛을 만들어 냈다. 그리스 세계 대회에서 준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마이 오운 그릭 샐러드’는 우리 김치처럼 그리스 사람들에게 ‘소울 푸드’인 그릭 샐러드가 모티브다. 그리스 대표 치즈인 페타 치즈를 비롯해 오이 양상추 올리브 심지어 올리브 오일까지 들어간다.
● “이제는 바-쉐프(Bar Chef)로 불리고 싶다”
2000년 입문했지만 그는 바텐더 경력을 3년이라고 말한다. 2008년 창작 칵테일에 눈을 뜬 때부터 계산한 것이다. 절대 길지 않은 기간인 3년.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엄씨가 창작 칵테일을 연구한 과정은 거의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칵테일에 대한 전문 서적이나 관련 자료가 국내에 거의 없다 보니 새벽 3시에 일이 끝나면 집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그래도 최근에는 국제 대회에 참가해 인연을 맺은 해외 각국 바텐더들과 페이스북 같은 SNS로 교류 하면서 새로운 국제 트렌드나 정보를 얻고 있다. 엄도환 씨에 따르면 최근 외국에서는 바텐더를 ‘바 쉐프’(Bar Chef)로 부르기도 한다. “바에서 손님의 입맛과 기호에 맞는 칵테일을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 내는 것은 쉐프랑 비슷하죠. 제가 앞으로 가고 싶은 길도 그쪽입니다.” 바텐더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먼 미래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바를 운영하고 싶어한다. ‘엄도환 바’의 콘셉트와 인테리어, 구조는 그의 머릿속에서 지금도 차근차근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해보고 싶은, 도전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와인 디너가 있듯이 칵테일 디너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 요리가 코스별로 나오면 그에 딱 맞는 칵테일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이죠. ‘바 쉐프’라는 이미지에 딱 맞지 않을까요.”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