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보면서 약자들도 위안 삼기를”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는 “얼마 전 가족을 잃은 분들이 만화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글을 보내줬다. 허구로 만든 이야기지만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 무엇보다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잘 만든 문학 작품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주호민 작가(30)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제목이다. 만화 제목으로는 무척이나 ‘큰’, 부담스러운 제목이다. 지난달 10일 ‘신과 함께’ 이승편 연재가 시작되자 누리꾼들은 ‘왕의 귀환’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왜 신일까. 왜 왕이라고 할까.
2005년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주 작가는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 ‘짬’으로 이목을 끌기 시작해 꿈을 잃지 않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무한동력’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런 그에게 ‘왕’이라는 칭호까지 안겨준 ‘신과 함께’는 한국의 전통 신을 소재로 했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3부작으로 계획된 이 작품의 저승편 마지막 회에는 댓글이 1만여 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주 작가는 “지옥이나 저승이라는 소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겁을 줘 착하게 살도록 만드는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면서 “최대한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사람들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고 말했다. 저승편을 연재할 때는 “착하게 살겠다”는 댓글이 유독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 만화에서는 각 재판을 통과하지 못한 죄인들에게 내려지는 무시무시한 형벌들도 눈길을 끌었다. 입으로 지은 죄를 다루는 염라대왕의 재판에서 패소하면 죄인의 혀를 뽑아 두들겨 넓게 편 뒤 그 위로 소가 밭을 가는 형벌을 받는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등의 공덕이 없는 자들은 초강대왕의 화탕지옥에서 죽을 수도 없이 부글부글 끓는 똥물, 용암, 염산에 튀겨진다.
주제는 다소 무거워 보이지만 그의 그림체에선 그런 심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승차사를 비롯한 신들에게서조차 무서운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스타벅스’를 흉내 낸 ‘헬벅스’, ‘구글’을 빗댄 ‘죽을’ 같은 패러디에선 특유의 위트가 드러난다. 순간순간 “큭큭” 하고 웃음을 터뜨리거나 기발한 상상력에 무릎을 치게 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는 “‘불교미술의 해학’ ‘우리 신 이야기’ 등 우리 신화와 관련된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했다”고 말했다. 무당에 대한 만화를 구상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한국의 토속신들을 알게 됐다는 것.
하지만 그는 2007년 ‘짬’ 시즌 2의 연재를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애니메이션과에 갔던 게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어쨌든 만화를 그리고 있으니까 힘들었던 과거는 지나간 일일 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새로 시작한 ‘신과 함께’ 이승편에는 가신(家神)이 등장한다. 집을 지키는 성주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화장실을 지키는 측신이 저승명부에 오른 할아버지를 데리러 온 저승차사들과 맞서 싸우고 한편으로는 재개발 지역에 혼자 남겨질 손자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현신(現身)해 두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신과 함께’를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회적 약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비록 허구지만…. 이승에서는 삶이 팍팍하고 힘들다고 해도 저승에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살아 있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기도 많고 사람들도 잘 알지만, 정작 전통 신앙은 많이 잊혀지고 있잖아요. 우리에게도 재미있는 우리 고유의 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댓글 안에서 종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 할머니가 가족의 평안을 빌며 성주단지에 돈을 넣는 장면이 나왔는데, 우상숭배라는 말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신과 함께’는 한국의 전통 신에 대한 이야기 자체로서의 이야기일 뿐, 종교적인 메시지는 배제하려고 합니다. 저요? (웃음) 사실 무신론자입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