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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양종구]‘글러브’와 한국의 스포츠 지도자

입력 | 2011-02-16 03:00:00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였던 김상남(정재영 분)은 은퇴할 무렵 사고뭉치로 전락한다. 음주에 야구배트까지 휘둘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자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청각장애인학교인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임시 코치직을 맡는다. 성심학교 야구부는 제대로 실력도 갖추지 못한 아주 어설픈 팀. 전국대회 1승을 목표로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보며 김상남은 “너흰 안돼”라며 처음부터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다.

하지만 글러브만 끼면 치고 달리며 행복해하는 장애 아이들에게 이끌려 지도를 시작한다. 자신이 최고가 되고자 했던 기억을 되돌려 피나는 훈련을 시킨다. 실력을 끌어올려 전국대회 1회전에서 명문 군산상고와 연장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 아쉽게 진다. 아이들은 졌지만 그동안 이루지 못한 성취감에 사로잡힌다. 야구 영화 ‘글러브’의 내용이다.

글러브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스포츠기자로서 글러브가 보여준 지도자상(像)은 좀 아쉬웠다. ‘선수 하다 바로 코치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리며 훈련시켜 큰 성과를 낸다. 역시 훌륭한 선수가 명감독이 된다.’ 극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영화적인 요소라 해도 김상남은 너무도 쉽게 명지도자가 됐다.

그렇다면 현실의 지도자상은 어떨까. 역시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인 현실이 영화와 너무나 비슷하다. 국내에는 자격 부여라는 제도가 있다. 선수생활을 일정 기간 하면 교육과정 없이 지도자 자격증을 주는 그릇된 관행이다. 감독 밑에서 일정 기간 코치를 해도 자격증을 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스승 밑에서 코치를 하다 자격증을 받아 지도자를 하는 경우도 많다.

체육과학연구원에 따르면 97%가 이렇게 자격증을 딴다. 지도자 과정을 통해 자격증을 얻는 사람은 단 3%란다. 이용식 체육과학연구원 박사(체육행정)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모르다 보니 때려서라도 훈련시키려는 잘못된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유독 국내에서 선수 구타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것도 결국 지도자 문제란 얘기다.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KBO), 서울대는 지난해 베이스볼아카데미를 만들었다. 한번 지도자가 되면 평생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고 감독을 하는 나쁜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한국 야구지만 백년대계 차원에서 지도자교육 시스템을 잘 갖춰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일부 기존 지도자들이 반발한단다. 기존 감독도 주기적으로 연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이 “감독인 내가 뭘 더 배워야 하느냐”며 버티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지난해 지역 강세종목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적으로 복싱이 강했던 인천 지역을 대상으로 선수 발굴과 지도자 교육 등 9가지 사업을 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특히 인하대의 도움을 받아 생리학과 심리학 등 스포츠과학을 지도자들에게 교육한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었다. 당시 강사였던 김용진 박사(운동생리학)는 “지도자들이 자기만의 노하우로 주관적으로 가르치다 객관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성과도 좋았다. 동인천중은 지난해 7월 열린 전국대회에서 11개 체급 중 4개를 석권했다. 인천시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이훈 인천체고 코치는 국가대표팀 코치, 김종구 동인천중 코치는 주니어 국가대표 코치가 됐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도자가 공부해야 도약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준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