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선 “수업대신 EBS교재 푸는 곳 전락”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일선 학교는 당황하는 분위기다.
수험생들은 영역별 만점자가 전체의 1%까지 나오면 한순간의 실수로 등급이 엇갈릴 수 있다며 부담을 느끼고, 교사와 학부모는 입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이 커졌다.
○ “실수하면 큰 일”
예를 들어 1등급을 받는 학생이 많아져 문항 수가 적은 과목에서 한 문제를 틀리면 2등급, 한두 문제를 틀리면 3등급으로 밀릴 수 있다. 한두 문제를 더 맞히느냐 틀리느냐에 따라 당락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최상위권 수험생일수록 긴장감을 더 느끼게 마련이다. 실력을 겨루기보다는 누가 실수를 적게 하는지를 겨루는 시험이 돼버렸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고3 수험생인 A 군은 “공부도 공부지만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하더라. 전문가들은 개념과 원리를 학습하라고 강조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문제풀이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지켜보는 학부모의 걱정도 크다. 고3 수험생을 둔 김영신 씨(48·여)는 “올해 정시에서는 대부분의 대학이 논술을 안 본다고 했으니 결국 수능으로만 결정하는 셈인데 수험생으로서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졌다”며 “이제 와서 학교생활기록부를 많이 반영하는 수시에 맞춰 준비할 수도 없고 막막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진학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사교육을 잡겠다며 도입한 EBS가 오히려 공교육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A고 교사는 “지난해에도 고3은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 때 EBS 교재만 풀었다. 다른 수업을 하려 하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쏟아졌다”며 “학교가 EBS 강의를 틀어주고 EBS 교재를 푸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인창고의 임병욱 교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개념이므로 학교에서는 개념 교육에 충실해야 하지만 EBS가 독점하다 보니 교과서도 무용지물이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수능 변별력이 약해지면서 대학별 고사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 B고 교사는 “학교에서 대비하기 힘든 대학별 선발고사가 중요해지면 결국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