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일주일 후면 이명박 정부도 출범한 지 만 3년이 된다. 적지 않은 국민은 이때쯤이면 이명박 정부가 뭔가 다르고 차기, 차차기 정부의 모델이 될 만큼 정부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6월 한나라당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릇도 깨고 손을 베일 때도 있었다”면서 험난했던 인생역정과 성공담을 소개했다. 집권 1년 후 각 부처 신년업무보고에서는 “설거지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질타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일하다 실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세웠다고 하면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강하게 경계했다.
복지부동 공직자 넘쳐난다
첫째, 설거지거리는 많은데 아직까지 설거지를 하지 않으니 그릇을 깨거나 손 베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했으나 3년이 경과하면서 내각이나 위원회가 확대 신설되고 설거지거리는 대폭 늘어났지만 법령, 예산, 지침 타령만 하느라 싱크대에 접시들이 산처럼 쌓여만 가고 있다. 그런데도 설거지를 안 하는 공직자들은 자신의 업무를 미루고 또 미루어 결국 현 정부 재임 기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 같다.
둘째, 설거지하는 대신 설거지거리들을 내다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설거지하기 싫을 때 일회용 접시나 컵을 쓰듯이 정책도 일회용으로 만들어 쓰고 버린다. 일회용품은 그래도 낫다. 접시도 유리컵도 씻기 귀찮으니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린다. 국민의 혈세가 어떻게 낭비되든 상관없이 허장성세 꼼수를 쓰니 쓰레기통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손을 베일 까닭이 없다.
셋째, 설거지거리를 아예 만들지 않는 풍조도 있다. 설거지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는 유형이다. 지시가 없으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치만 살피면서 순간을 모면하고 여론의 눈치나 살피고 기관의 이익만 챙기는데 설거지거리가 생길 리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될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한다. 속에서 썩고 곪아 가는데도 부엌엔 설거지거리가 안 보이니 외견만 관찰했다가는 깜빡 속을 수 있다.
넷째, 설거지는 하되 아주 건성으로 하는 부류도 있다. 대충대충 시늉만 하고, 관료주의의 부정적 전형이랄 수도 있고 복지부동의 형식주의일 수도 있다. 내 집 설거지는 대충 하고 남의 집 잔칫상에 관심을 갖는 기회주의 공직자들이 제대로 설거지를 할 까닭이 없다.
한주호 석해균 모델 많이 나와야
이명박 정부는 이제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매진할 시점이다. 갈 길도 멀고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다. 대통령이 약속한 감사원칙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국민들도 여전히 접시 깨지는 유쾌한 소리를 자주 듣고 싶어 한다. 누구도 손을 베이는 걸 원치 않지만 공직자들이여, 분발하여 국민들의 메마른 가슴을 봄비처럼 적셔주기 바란다.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yoohy@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