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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안광복]CIA와 이집트 사태에서 국정원이 배울 점

입력 | 2011-02-18 03:00:00


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팀 와이너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가 2007년 쓴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이라는 책은 1946년 설립된 중앙정보국(CIA)의 60년 역사를 기록했다. 이 책은 미국이 정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국가안보의 위험과 그 원인, 그리고 국가정책 결정을 오도했던 사례들을 싣고 있다.

최근 CIA는 이집트 등 중동지역 사태에서 또 한 번 기록할 만한 정보 실패를 초래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정보기관들은 튀니지 정부가 조기 붕괴될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튀니지 정부가 붕괴된 후에야 이 사태가 중동의 다른 국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하는 등 상황 판단에 허점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런 잘못된 정보가 미국 정부의 대응을 혼란스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고 언론은 비판했다. 또 리언 파네타 CIA 국장이 미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사임 여부에 대한 잘못된 상황판단 보고를 하고, 이 사실이 세계에 보도됐다. CIA의 정보 판단 실수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외적으로 지도자로서 체면을 구겼고, CIA는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정보 무능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언론과 의회에서 나온 지적들을 종합해 보면 CIA의 이번 정보 실패는 다음의 몇 가지가 원인으로 보인다.

첫째, 시위의 도화선이 된 분신자살의 폭발성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고 향후 사태의 전개 방향에 대한 예측 능력이 미흡했다. 이는 정보기관에 첩보 수집이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론 첩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분석 및 판단능력이 정보업무를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CIA와 연방수사국(FBI)은 2001년 9·11테러 때도 납치 비행기로 자살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여러 건 입수하고도 이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데 실패한 경험이 있다.

둘째, 정보요원들이 중동지역에서 대(對)테러 첩보에만 주력함으로써 다른 분야에서 정보 공백이 생겼고, 이에 따라 지역의 광범위한 변화 추이에 대한 예측을 소홀히 했다. 이는 정보활동에서 한 분야에 몰입하는 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정보 분석은 단기는 물론이고 중·장기적인 전략분석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셋째, 튀니지와 이집트 청년들을 시위에 결집시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환경의 변화를 재빨리 파악해 반영하지 못한다면 미래 예측에서 오판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중동에서 정보활동을 벌일 때 이집트 정보부(EGID)와 너무 밀착돼 있어 늘 이집트라는 창을 통해 여러 중동 국가를 바라보는 우를 범했다. 이는 국제적인 정보 공유가 어느 한 국가로만 집중된다면 객관적인 정보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원적인 정보 협조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정확한 정보 분석 및 판단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북한을 제일의 정보목표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국가정보원도 위에 열거한 정보 실패의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국정원도 한국판 ‘잿더미의 유산’이 나오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100% 제거하지는 못해도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사명이고 숙명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국정원 지휘부의 리더십 발휘를 기대한다.

안광복 전 국정원 기조실장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