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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하는 ‘대장금 자매’

입력 | 2011-02-18 03:00:00

“나무 깎고 짜 맞추고… 요리는 양반이네요”
소반 제작 도전 궁중요리 대가 한복려 - 한복선 원장




“소반은 전통음식을 담는 그릇이자 전통음식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소반 만들기에 도전하게 됐죠.” 전통음식문화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 요즘 소반 만들기에 푹 빠져있는 조선궁중음식 인간문화재 한복려(오른쪽) 한복선 씨 자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우리 둘이 그랬다니까요. ‘야, 음식이 더 쉽다’고.”

예순을 넘긴 두 자매의 손은 상처투성이다. 톱과 칼에 베이고 사포질하다 벗겨진 손끝 마디마디.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부문 기능보유자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65)과 기능이수자인 친동생 한복선 한복선식문화연구원장(63) 자매는 5주째 전통 소반(小盤)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 ‘식객’에서 음식 조언을 맡은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복려 원장은 궁중음식문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황혜성 선생의 장녀. 동생 복선 복진 씨 등 세 자매가 모두 조선왕조궁중음식을 연구하는 가족으로 유명하다. 전주대 교수인 막내 복진 씨는 짬을 내지 못해 두 언니만 올 1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진행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소반 6주 완성반에 등록했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문화의집 2층. 톱밥이 자욱한 교실에서 소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언니 한 원장은 “이게 모두 손으로 직접 깎고 짜 맞춘 것”이라며 거의 완성된 소반을 불쑥 내밀었다. “음식 올리는 곳이 상판, 호랑이 다리를 닮은 상다리가 ‘호족(虎足)’, 상판 아래 가장자리를 두른 구름 모양의 나무가 ‘운각(雲刻)’…. 운각과 호족에 상판을 올리는 작업을 ‘상량식’이라 부르던데, 한옥 지붕 올리는 것을 그렇게 부르거든요. 기막힌 비유 아니에요?” 그는 작품을 앞에 두고 신이 난 아이처럼 말을 멈추지 못했다.

평생 음식을 연구해온 두 자매가 소반 제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전통음식에서 이들을 담는 그릇이자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반은 그 자체로 음식과 뗄 수 없는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언니 한 원장은 “우리 음식이 늘 상(床)을 동반하는 만큼 장인들이 쏟아 붓는 땀과 혼을 이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형문화재 장인들이 하나의 기능에 몰두하다 보면 남의 것 소중한 줄을 모르게 되는데, 우리가 서로의 기능에 관심을 갖고 다른 기능의 가치를 높게 살 줄 알아야 마땅할 것”이라고 도전 이유를 설명했다.

자르고 깎고 다듬고. 소반을 제작하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전통음식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 배움을 이어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은 뭘까. 자매는 운각을 상판에 끼워 맞췄을 때를 꼽았다. 언니 한 원장은 “판판한 운각의 안쪽 부분에 0.9mm 간격으로 칼집을 내면 상판에 꽂기 알맞은 형태로 구부릴 수 있게 된다. 상판 홈의 둘레로부터 운각을 구부릴 때 가장 알맞은 칼집 간격을 계산한 것인데, 예술과 수학적 원리를 결합한 장인들의 지혜에 혀를 내두를 따름”이라고 감탄했다. 동생 한 원장은 “모든 것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듯이, 나무를 깎을 때도 그 결에 따라 깎아야 쉽고 아름답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언니 한 원장은 5월에 열리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중요무형문화재 공개전시행사에 낼 음식을 자신의 소반에 올릴 작정이다. 그는 “소반이 그냥 소반인 줄만 알았지 이렇게 땀과 혼을 불어넣는 작품일 줄 몰랐다. 다른 기능을 가진 장인들의 가치를 새삼 깨치는 계기가 됐다”며 뿌듯해했다. 다른 기술도 배우고 싶냐는 질문에 “동생은 이미 유기와 민화 제작법을 배웠다. 나도 기회가 되면 음식을 담는 그릇, 음식을 덮는 밥상보 제작법을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