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최선이었습니까… 올해는 확실합니까
《 한나라당 김성회, 민주당 강기정 의원에게 지난해 12월 8일은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날 그들은 국회폭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려는 한나라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민의의 전당’ 국회 본회의장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국회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정부의 4대강 사업 예산 삭감을 둘러싼 여야 협의가 사실상 결렬된 상황에서 힘의 대결이 펼쳐졌다. 여야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가 엉켜 몸싸움을 하면서 욕설이 난무했고 주먹이 오갔다. 여야 두 세력의 충돌 과정에서 김 의원은 강 의원이 자신을 먼저 때렸다며 주먹을 날렸다. 얻어맞은 강 의원은 주위에 있던 국회 경위의 뺨을 여러 차례 때렸다. 김 의원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고 강 의원은 입술 안쪽을 여덟 바늘 꿰매는 중상을 입고 입원했다. 강 의원에게 맞은 경위는 그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가 강 의원의 사과를 받고 취하했다. 그들은 그렇게 상처를 입었다. 》
두 의원은 지난해 12월 8일 이전에는 당적은 달라도 18대 국회 ‘동료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과 친하고 강 의원과도 잘 지냈었다”고 했고 강 의원은 “만나면 악수하고 인사하는 사이였다”고 표현했다. 지금 서로 만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김 의원은 “만나고 싶어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겠지”라고 했다. 강 의원은 “만날 이유가 전혀 없고 할 얘기도 없다. 엊그제 싸운 사람들이 화해한다고 웃고 떠들면 국민이 뭐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소송으로 얽혀 있다. 강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해 5000만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김 의원의 폭행으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강 의원은 “내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 차원에서 제기한 소송”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오히려 먼저 강 의원에게 얻어맞았다며 맞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 폭력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김 의원과 이은재 의원 등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강 의원과 최영희 의원 등을 고발했다.
“단언하건대 내가 김 의원을 때리지 않았다.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캠코더나 들고 다닐 생각이었다. 당시 현장에 가보니 김 의원과 국회 속기사 등이 부딪히고 맞고 다치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니까 김 의원이 내가 현장을 진두지휘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때렸다.”(강 의원)
“강 의원이나 나나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 본회의장 대치 분위기가 그랬다(험악했다).”(김 의원)
강 의원은 당시 국회폭력의 근본 원인이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강행”이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야당과의 협상을 중단하고 예산안 처리를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야당이 물리적으로 본회의장 출입을 저지한 점을 거론하며 “국회의원이 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은 법과 제도로 보장해주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제도 도입과 같은 방식으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선 두 의원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폭력행위에 연루됐다며 “그들도 피해자”라고 변호하지만 이미지 손상은 고스란히 그들만의 몫이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김 의원은 말을 아끼면서도 “지금은 강한 이미지로만 비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지난해 박근혜 전 대표가 날더러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라고 했을 정도로 나도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강 의원은 “지역구에선 여당의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며 “이 정권에서 안 싸우면 오히려 바보 취급 받는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싸우는 걸 보고 박수 치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주변에선 아쉬워하면서 ‘강 의원이 앞장서지 말라’고 한다. 내 이미지는 구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11일 오전 10시 30분경 김 의원이 강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의원의 전화번호가 휴대전화 화면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부재중 메시지를 남기겠느냐는 기계음이 들리자 전화를 끊었다. “때가 되면 서로 만날 기회가 오겠지….”
▼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갈등 ▼
18대 국회 들어 국회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국 정치의 오블리주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여야는 앞 다투어 “시급히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12월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난장판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국회폭력 방지법안을 서둘러 처리하자고 강조하고 나섰다. 여야는 당장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법안 내용에선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폭력 처벌을 강화하고 의안 상정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행위를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정미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회 내 민주적 기본질서 유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국회 표결을 방해하기 위해 국회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막거나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 등에게 폭행 또는 협박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경우, 의장석이나 위원장석을 점거할 경우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10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매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쟁점 법안 표결이 어렵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상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쟁점 법안이라도 무조건 상정하게 하되 상임위나 본회의 등에서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표결 전에 반드시 ‘법률안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특히 여야 원내교섭단체 간 합의가 이뤄지거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조정절차를 끝낼 수 없고, 조정절차가 종료되기 전에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의회 폭력은 대한민국 국회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의회에서도 의원들 간 법안 심의를 둘러싸고 주먹다짐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이제 폭력 의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의회에선 쟁점 법안이 있으면 반대하는 정당에서 필리버스터를 비롯한 합법적 반대행위를 하지만 협상이 안 되면 결국엔 표결에 따른다. 법안 처리에 대해선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인식이다. 독일 의회 상황도 미국과 비슷하다. 또 영국 하원에서는 의장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의원을 호명(naming)하면 해당 의원은 직무정지 동의안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랑스에선 의장을 모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의원에게 일시 등원정지 처분까지 내린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