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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플레이션 강타… 수입수산물이 밥상 점령

입력 | 2011-02-24 03:00:00

구제역-AI 여파로 육류 대신 수산물 소비 늘며 국내산 가격 급등




21일 기자가 찾은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수산시장은 다양한 수입 수산물로 마치 ‘외국 수족관’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노르웨이산 고등어, 대만산 꽁치, 태국산 주꾸미 등 서민 식탁의 단골 수산물 중에도 외국산이 없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젓갈류도 러시아산 명란젓, 파키스탄산 조개젓 등 주재료를 수입해 만든 제품이 즐비했다. 해물탕이나 구이용 재료로 쓰이는 새우(중하)는 인도네시아산, 사우디아라비아산, 태국산 등으로 원산지도 다양했다. 외국산 틈바구니에서 국내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주부 박찬희 씨(35)는 “고등어나 주꾸미까지 수입하는지 처음 알았다”며 “국내산보다 외국산 가격이 많이 싼 것 같다”고 말했다.

싼 수입 수산물이 서민들 밥상을 점령하고 있다. 국내산 수산물의 어획량이 줄어든 데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육류 대신 수산물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국내산 수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는 ‘피시플레이션(Fish+Inflation)’ 때문이다. 고등어, 물오징어 등 그동안 국내산으로도 충분히 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던 품목까지 외국산이 급증하고 있다.

○ 비행기로 수입해도 국내산보다 싸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외국산 판매가 익숙한 표정이었다. 외국산 홍어를 파는 한 상인은 “아르헨티나산 홍어(냉동)는 kg당 가격이 1만∼1만5000원인데, 국내산(생물)은 3만5000원대”라며 “식당 등 업소를 중심으로 외국산을 찾는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중국산 조기를 파는 다른 상인은 “어차피 같은 서해 바다에서 중국 배가 건지면 중국산, 한국 배가 건지면 국내산 아니냐”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이 시장에서 거래된 수산물 중 외국산 비중이 30% 가까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내산 수산물 가격이 급등한 피시플레이션 현상은 외국산 수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크게 높여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이 최근 항공 운송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태국산 생물 주꾸미의 경우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본점에서 370g들이 한 팩이 4500원(100g당 가격 1216원)에 팔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팔리는 국내산 주꾸미는 300g들이 한 팩이 5800원(100g당 가격 1933원)이었다. 항공운임을 물고 들여온 외국산이 국내산보다 훨씬 싼 편이다.

○ 식탁 영토 주도권 외국산에 내주나


주요 국내산 수산물 가격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량진수산시장 관계자는 “국내산 고등어는 어획량이 크게 줄어 냉동 비축분까지 거의 소진했을 정도로 물량이 없는데, 특히 자반용으로 많이 소비되는 무게 400g 이상인 고등어는 그나마 거의 잡히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반고등어 1손(2마리)은 국내산이 5980원, 일본산이 4580원이다(대형마트 기준).

지난해 여름에 어획량이 매우 부진했던 국내산 오징어도 마찬가지다. 21일 신세계 이마트 용산점의 대만산 냉동오징어 매대 앞에는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리당 740원 하는 오징어 4마리 가격은 2960원. 맞은편 매대에 전시된 국산 오징어는 대만산보다 몸집이 조금 컸지만 2마리를 5960원에 팔고 있었다. 기자가 지켜본 30분 동안 대만산은 20팩 가까이 팔려 나갔지만 국내산을 집어 드는 소비자는 없었다.

수입 수산물의 약진은 대형마트의 매출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신세계 이마트의 수산물 매출에서 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5%, 2009년 17%, 2010년 20%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는 설 명절 이후 고등어, 오징어 등 해외 직매입 제품으로 기획전을 열면서 2월 셋째 주에는 이 수치가 25%까지 올라갔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2월 7%였던 외국산 수산물 매출 비중이 올해 2월에는 12%로 늘었다. 같은 기간 취급하는 수입 수산물 종류는 15개에서 21개로 늘었다.

시민들은 외국산이 늘어나는 게 달갑지는 않지만 물가 상승 속에서 싼값에 사먹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주부 길정옥 씨(59)는 “과일, 채소 등 다른 신선식품 가격이 크게 올랐는데 수산물은 그나마 외국산으로 지출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