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특파원 이란 3信… 젊은층 ‘친서방’ - 중장년층 ‘반미’ 뒤섞여
이종훈 특파원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히잡(머리만 가리는 두건)을 둘러쓴 채 코와 턱에 붕대를 감고 안면 전체가 부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알고 보니 높은 코나 매부리코를 깎아 서구식의 코로 만드는 성형수술을 한 것. 또 발리야스르 대로 등 하루 종일 막히는 시내 주요 도로에서는 청소년들이 도로 한가운데를 오가며 운전사나 승객에게 CD나 DVD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영화나 팝송, 게임 등을 담은 이 불법 디스크들은 우리 돈으로 장당 1만 원에 팔렸는데 인기가 많았다.
어려서부터 위성방송 또는 여러 음성적인 방법으로 서구 문화를 접해온 이곳 젊은이들은 이슬람 혁명 세대와 달리 인권, 평등, 시장 경제 같은 서구적 가치에 익숙해 있다. 그러니 부패한 성직자, 정치인 등 지도층에 환멸을 느끼고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면서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반에서 1등을 한다는 고등학생 라자니 군은 고교를 졸업하면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모친은 “하나뿐인 자식이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데 돈이 없어 고민이다. 이란에서는 출신 배경이 좋지 않으면 공부만 잘해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선진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국내의 억압과 불평등을 피해보고 싶은 욕구가 겹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집안 자녀들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다반사다.
테헤란 시내를 다니다 보면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대형 초상화와 함께 많이 눈에 띄는 게 반미 그림이다. 미국과 성조기를 폭탄으로 공격하는 그림을 벽에 그려 넣은 고층 빌딩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옛 미국대사관 담벼락에는 자유의 여신상 얼굴에 악마를 그려 넣은 대형 그림도 있다. 그 옆에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호메이니의 길을 믿고 따르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란 정부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팔레비국립공원에 친미성향이었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전 국왕의 상반신을 없애고 다리만 흉하게 남긴 조형물을 세워놓기도 했다.
해골 그려넣은 자유의 여신상 성조기를 배경으로 몸은 자유의 여신상이지만 얼굴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해골을 그려 넣은 이 대형 벽화는 테헤란 시내 옛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테헤란=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