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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통기타 붐 타고 찾아온 ‘낙원상가의 봄’

입력 | 2011-02-25 03:00:00


23일 오후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2층에서 손님들이 기타를 고르고 있다. 통기타 치는 아이돌 가수, 뮤지션을 꿈꾸는 일반인들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 7080 포크 음악 부활 등으로 최근 낙원악기상가는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종로구 제공

분명히 간판에는 ‘상가’로 쓰여 있다. 물건 살피는 사람들, 흥정하는 고객, 손님 응대하느라 바쁜 상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 늘 그렇듯 시끌벅적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무통을 따라 울리는 통기타 소리,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피아노 소리, 록 밴드 콘서트가 열린 듯 흥겨운 드럼 소리 등 23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상가 2층은 그냥 ‘소리’뿐이었다. 통기타 가게 상인은 “음악소리가 크면 클수록 바쁘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수십 명이 기타, 피아노 등 악기를 만지작거렸다. 상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10년 동안 이렇게 바쁜 적은 처음”이라며 눈웃음을 지었다. 낙원악기상가가 요즘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발 디딜 틈 없는 종로 낙원악기상가


인기의 중심에는 통기타, 우쿨렐레 등 어쿠스틱 악기가 있다. 이런 악기를 찾는 사람은 전문 음악인보다 처음 배우려는 ‘초짜’가 많았다. 무작정 가게 앞에서 “기타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는 여대생 유지혜 씨(23)도 그중 한 명이다. ‘MP3파일’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악 시대에 유 씨 역시 아날로그 LP 음반 한 장 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여가수 아이유가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통기타를 든 가수 지망생이 많아진 것이 유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 씨 옆에는 양복을 입은 40대 직장인이 기타를 꽤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직장인 밴드 ‘어게인’의 기타리스트란다. 본명을 묻자 “직장인이 아닌 기타리스트로 활동할 때는 ‘폴’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 록 밴드 활동을 했던 그는 최근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 1970년대 포크송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어릴 적 친구들과 직장인 밴드를 만들었다. 그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 느낌으로 낙원악기상가를 찾았다”고 말했다.

낙원상가 2, 3층에 위치한 악기상가에는 240여 개의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복도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하루 수백 명이 어깨를 부딪치고 다닐 정도로 북적인다. 기타 가게 ‘에클레시아’를 운영하는 박주일 사장(46)은 “지난해와 비교해 손님은 50%, 매출은 20∼30% 늘었다”고 말했다. ‘형제악기사’의 하봉룡 사장(48)은 “그동안 장사가 하도 안 돼 아르바이트생을 그만두게 했는데 최근 이들을 다시 불렀다”고 말했다.

○“반짝 호황 이어갈 마케팅 필요”


낙원악기상가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8년 낙원상가가 지어질 당시에는 잡화부터 온갖 물건을 파는 종합상가였다. 악기 전문 상가로 거듭난 것은 1980년대부터. 악기 상인들이 낙원상가 2, 3층에 몰리며 대형 악기 상점처럼 변했다. ‘송골매’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등 그룹사운드 음악이 인기를 얻은 1990년대 초까지는 하루 수천만 원을 버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그러나 1992년 노래방 기계가 보급되면서 클럽 및 밤무대 연주자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가는 불황에 휩싸였다.

10년 만에 찾아온 호황에 대해 상인들은 한편으로 “불안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 사장은 “대부분 통기타를 처음 배우려고 오는 손님”이라며 “이들은 고급 악기가 아닌 10만 원짜리 값싼 연습용 중국제 위주로 사가기 때문에 손님이 많다고 매출이 느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통기타 등 어쿠스틱 악기점 외에 다른 악기점은 여전히 불황인 곳도 많다.

낙원악기상가 번영회는 호황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최근 처음으로 ‘마케팅회의’를 열었다. 번영회 관계자는 “장기하, ‘크라잉넛’ 등 낙원악기상가를 자주 찾는 유명 뮤지션들을 초청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