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였던 내가 호강을… 국회보니 이게 바로 민주주의”
국회 대정부질문이 있던 24일. 국회 본청 3층의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짙은 갈색의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한 노신사가 본회의장(2층)을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오전 10시부터 50분간 꼿꼿하게 상체를 바로세우고 앉은 채 자유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 대정부질문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의 질의와 김황식 국무총리의 답변을 경청했다. 왼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이따금씩 미간을 찡그렸다. 한마디의 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불편한 다리를 끌면서 다소 힘겹게 본회의장 방청석 계단을 천천히 걸어나온 그는 “북에서 천덕꾸러기였던 내가 대한민국 국회에 와보다니…. 영광입네다”라고 말하면서 방청석에 들어가기 전 맡겨놓았던 중절모와 지팡이를 잡았다. 9일 61년 만에 남한의 가족과 재결합한 탈북 국군포로 김모 씨(85).
▶본보 2월 10일자 A1·4면 참조
A1면 누가 이 국군포로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A34면 76세 여동생이 끓인 떡국, 회한 얹어 삼킨 85세 오빠
지난해 4월 북한을 탈출해 8개월이나 제3국에 있을 때부터 그에게 ‘대한민국 국회’는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김 씨의 이 같은 희망은 그의 귀환을 도운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본회의 방청에 앞서 15분간 이뤄진 선진당 이회창 대표와의 면담에서도 김 씨는 “이렇게 호강을 하니 죽어도 한이 없다”며 “소원이었던 대한민국 국회 본회 참관을 잘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연세에 비해 굉장히 건강하시다”고 덕담을 건네자 김 씨는 “대한민국에 와서 건강해졌다”고 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가을, 편지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자 김 씨는 “겪은 고생을 다 말하지 못했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 씨는 탈북한 뒤 제3국 재외공관에 머물 때인 지난해 9월 18일 박 의원에게 “고향땅을 밟게 해 달라”며 A4 용지 21쪽에 걸쳐 쓴 장문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는 동아일보에 소개됐다.
▶본보 2010년 9월 25일자 A1·10면 참조
A1면 84세 탈북 국군포로가 南으로 보낸 ‘추석 편지’
A10면 병석에 누운 채 한국 올 날만 기다려
김 씨는 오전 9시 10분 도착했을 때부터 두 시간 뒤 나갈 때까지 얼굴의 3분의 1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그는 “혹시라도 (얼굴이 노출돼)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북한에 (가족이) 29명이나 있다. 다 데려와야 하는데…”라며 답답해했다.
“제발 남북이 싸우지 말아야 하는데, (제3국에 있을 때) TV를 통해 연평도에서 (북한 포격으로) 남한 주민 두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북에 남아 있는 손주 중엔 군인도 있는데…. 걔가 남한 사람들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할 텐데 이래 가지고는….” 국회를 떠나면서 그는 “의원들에게 ‘통일하자’란 연설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