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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 타계 한달… 구리시 자택 지키는 장녀 호원숙 씨 만나보니

입력 | 2011-02-25 03:00:00

“임종 이틀전 일기에 ‘감사하다’ 남겨”




《한낮의 햇살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정원에는 앵두나무, 박태기나무, 모란, 할미꽃들이 새봄이 오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돌보던 안주인은 뜰에 나서지 않았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해. 사시사철 나는 잡초들이 다 달라” 하며 살뜰히 정원을 가꾸던 고(故) 박완서 선생. 고인이 없는 정원은 봄의 기운이 움트는 날에도 허전해 보였다.》

박완서 선생이 생전 살갑게 돌봤던 경기 구리시 아천동 집을 찾았다. 생전에 고인의 도움을 받았던 장애재활기관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이사가 인사차 나선 길에 동행한 것이다. 지난달 22일 고인이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아차산 자락의 ‘아치울 마을’로 불리는 주택가에 자리 잡은 노란 2층집은 박 선생이 1998년 새로 지어 13년 동안 살았던 공간이다.

“어머니는 집을 지으면서 ‘혼자 살고,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하셨죠. 분홍색으로 칠해 달라고 공사를 맡은 이에게 말씀하셨는데, 그쪽이 고집이 있었는지 마음대로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박완서 선생이 떠난 지 한 달. 박완서 선생은 작업실 벽에 걸린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인은 “내가 참 행복했을 때 사진 같다”며 평소 이 사진을 좋아했다. 액자 밑에는 정부로부터 받은 금관문화훈장, 고인이 집필할 때 사용했던 데스크톱, 노트북, 프린터 등이 놓여 있다. 구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고인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57·사진)가 외벽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살다가 맘에 안 드시면 분홍색으로 다시 칠해 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지만 고인은 “노란색도 괜찮다”며 다시 손보지 않았다.

정갈한 집안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1층 현관으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고인의 작업실. 별 문이 없이 거실 한편에 위치한 작업실은 고인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창이 없는 쪽의 세 벽면을 채운 책장에는 책이 가득했다. 책상 위 데스크톱과 랩톱 컴퓨터, 프린터기와 팩스에 눈길이 갔다.

“어머니가 원고지에 글을 쓰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새로운 기기를 사용하는 데도 뒤처지지 않으셨어요. 외부에 나갈 때 쓰는 작은 랩톱도 따로 있었고, e메일도 초기부터 사용하셨죠.”

박완서 선생이 1998년부터 임종 때까지 13년 동안 생활한 경기 구리시 아천동 집.

호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 배치를 바꾸지 않아 고인이 생활하던 공간 그대로라고 했다. 달라진 것은 책상 위 벽에 걸린 고인의 영정과 책상 위에 놓인 금관문화훈장, 초와 향뿐이었다. 영정 속에서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가 평소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내가 참 행복했을 때 사진 같다’고요.” 고인이 30여 년 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살 때 김종구 사진작가가 찍은 작품으로, 김 작가의 사진전시회에 갔다가 구입했다.

평소 고인이 즐겨 마시던 따스한 홍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호 씨와 마주 앉았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어머니는 (임종 직전) 많이 호전됐었어요.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내가 많이 회복돼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죠. ‘봄에 꽃 피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시기도 했어요.”

유언은 없다고 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남은 친필 원고도 없고, 컴퓨터에 저장된 미발표 작품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일기를 썼다고 했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는 박완서 선생의 글과 그림을 담은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1월 26일자)를 동판으로 만들어 고인의 장녀인 수필가 호원숙 씨에게 전달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많은 예감을 하신 것 같아요. 일기는 거의 매일 쓰셨는데 (지난해 10월) 병원에 입원한 뒤에는 쓰지 않으시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쓰셨죠.”

호 씨는 어머니의 사생활을 밝히기 죄송스럽다며 일기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것을 먹고, 미장원에 가고 그런 일상사였어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 일기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셨죠.”

고인은 2007년부터 푸르메재단에 매달 기부금을 냈고 신간이 출간되면 목돈도 쾌척했다.

백 이사는 “2006년 일면식도 없던 상태에서 드린 원고 청탁을 흔쾌히 들어주셨고, 먼저 기부 의사까지 밝히셨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고인에 대한 글과 그림을 담은 ‘동아일보 스포트라이트’(1월 26일자)를 동판으로 만들어 호 씨에게 건넸다. 5월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들어서는 푸르메어린이재활센터에 고인의 이름을 딴 ‘박완서 치료실’도 만들 예정이다.

구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