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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성희]구제역과 기후변화

입력 | 2011-02-25 20:00:00


정성희 논설위원

구제역이 발생한 지 오늘로 91일째를 맞았다. 소의 경우 24일째 양성 판정이 없고 돼지도 일주일째 구제역 발생이 없어 지난 3개월간 맹위를 떨치던 구제역이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백신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구제역 청정국에 집착하지 말고 백신 투여가 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구제역이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공교롭게도 그 지독했던 겨울 추위도 물러가고 한동안 완연한 봄 날씨를 보였다.

겨울 한파 구제역과 관련 없나

‘지난 50년 이래 최악의 구제역’이라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평가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구제역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소 15만 마리, 돼지 324만 마리 등 340여만 마리를 도살처분했다. 지금까지 도살처분한 최대치가 2002년 16만 마리였으니 21배 규모다. 매몰 보상액만 최대 3조 원에 이른다.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물가 불안, 매몰지 붕괴와 침출수 누출 같은 환경재앙, 농민과 공무원들의 심리적 충격 등 후폭풍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구제역은 왜 이렇게 지독했을까. 초동방역의 허술함과 백신접종의 실기(失機) 외에 다른 원인은 없을까. ‘동물 전염병 발생과 축산업에 대한 기후 및 환경변화의 영향’을 주제로 2009년 열린 제77차 OIE 총회에서 단초를 읽을 수 있다. OIE가 당시 가맹국 12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가 기후변화가 동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고 응답했다. 51%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가축 관련 질병이 국내에서 1건 이상 확인됐다고 답변했다.

생생한 사례가 2007년 유럽에서 창궐한 ‘청설병(blue-tongue disease)’이다. 2006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시작된 이 병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으로 번져 200만 마리의 양과 소가 죽었다. 청설병 바이러스의 매개체는 날벌레다. 이 날벌레가 따뜻한 바람을 타고 바다 건너 영국에 도달했다. 청설병 바이러스는 온도가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복제를 못하는데 때마침 영국 날씨가 따뜻해 바이러스가 살기 안성맞춤이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에 노출된 양들이 픽픽 쓰러졌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청설병 바이러스가 어떻게 음습한 영국까지 와서 살게 됐을까. 기후변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청설병에 인간은 감염되지 않지만 사람과 가축이 동시에 감염되는 인수공통 전염병도 있다. 뇌염의 일종인 웨스트나일열을 일으키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감염된 새로부터 모기를 매개로 가축과 사람에게 전염된다. 주로 철새에 의해 옮겨지는데 2002년 미국에서만 450명이 사망했다. 소 양 낙타 등에 발생하는 리프트밸리열도 감염된 동물의 피나 장기에 접촉할 경우 사람도 감염된다. 특정한 기후 및 환경에서만 살아가던 바이러스가 기후변화로 전 세계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세계화’라 할 만하다.

기후변화로 늘어날 전염병

이번 사태도 날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날씨가 더워야 바이러스 질환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기온이 4도 아래로 내려가야 활동성이 좋다. 지난 겨울은 낮 기온도 대체로 영하를 기록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너무 작아 먼지에도 달라붙는다. 강풍에 먼지가 멀리 날아가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육되는 소 돼지의 도축 시까지 생육기간(돼지의 평균 도축 연령은 6개월)이 너무 짧은 점도 가축의 면역력을 떨어뜨렸다. 이상기후가 심해질수록 이런 형태의 전염병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동물도 이럴진대 이동성이 없는 식물에 대한 충격은 더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생태계는 물론이고 가축과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구제역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