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을 본격 수사하기 직전에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약 2년 만에 귀국했다. 그의 귀국은 박 회장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모두 끝나자 이뤄졌다. 이 때문에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에 앞서 힘을 가진 쪽과 모종의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귀국 경위야 어찌됐든 검찰은 한 전 청장을 철저히 수사해 각종 의혹의 진위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1월 국세청장에 임명된 한 씨는 현 정부 출범 때 이례적으로 유임됐다. 그가 전군표 전임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시가 약 3000만 원짜리 그림을 상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은 2009년 1월이었다. 그는 바로 국세청장 직을 사퇴한 뒤 두 달 만에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림 상납 외에도 받고 있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가까운 경북 포항의 유지 및 기업인에게 골프 접대를 하며 국세청장 연임 로비를 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게서 태광실업의 세무조사를 무마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소문도 단순한 소문만은 아닌 것 같다. 2007년 포스코 세무조사 때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이 대선 때 논란이 됐던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 대통령이라는 문건을 발견했지만 무마시켰다는 의혹도 있다.
이번 수사 대상에는 현직 대통령이나 권력 주변 인사들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만큼 수사 진전에 따라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권력이 개입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검찰은 수사를 적당히 끝낼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의혹의 실체를 가리기 위해 수사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이번 수사가 그동안 실추됐던 검찰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되찾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부실한 수사로 특별검사가 나서게 될지는 검찰 하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