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정민 김동준 외 지음 512쪽·3만2000원·태학사
김홍도의 ‘무동(舞童)’. 저자는 그림 속에 그려진 군영 소속의 음악인들이 조선 후기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태학사 제공
저자의 말대로 두 점의 매조도(梅鳥圖)에 얽힌 이야기가 설명과 함께 끝없이 이어진다.
1813년 7월 14일 다산 정약용은 큰딸의 혼인을 맞아 아내 홍씨가 3년 전에 보내온 치마를 잘라 딸을 위해 매조도를 그려 주었다. 아래 위 두 겹으로 매화 가지가 가로로 걸려 있고, 아래쪽 가지에는 멧새 두 마리가 엇갈려 앉았다.
딸을 시집보내고 그림과 시를 그려 준 다산은 얼마 안 있어 초당 생활 중 얻은 소실에게서 홍임이란 딸을 보았다. 혹 자기가 떠나면 혼자 남겨질 갓 태어난 딸을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은 아닐까. 다산의 감춰진 애틋한 부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이렇듯 그림에 얽힌 다양한 볼거리와 사연을 담았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을 비롯해 사진실 중앙대 연희예술학부 교수, 이경화 세미원연꽃박물관 학예사 등 다양한 전공의 한국학 연구자 27명이 참여했다.
애틋한 부정뿐만이 아니다. 그림 속에 담겨진 전술(戰術)의 변화도 읽어낸다. 1588년 정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시전부락 여진족을 토벌하는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와 심하 지역에 파병된 조선군이 후금에 대항해 진을 펼친 ‘파진대적도(擺陣對賊圖)’에는 임진왜란 전후 조선군에 나타난 변화의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그림을 통해 기병 위주의 편제와 전술체계를 가진 조선군이 임진왜란 이후 조총 제작 등에 따라 급속히 보병 위주의 편제와 전술 체계로 재편되었다고 말한다.
기록에만 전할 뿐 실체는 알 수 없는 정조의 귤 술잔부터 서양식 정장을 입은 박영효의 사진까지 책은 시대와 분야를 넘나들며 학문적 통섭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로 참여한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림은 감상의 대상이기 전에 정보이자 역사다. 그림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 복원하는 일은 한국학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대중과 한국학의 만남을 표방하며 대표적인 한국학 교양잡지로 뿌리내린 계간 ‘문헌과 해석’ 통권 50호 발간을 기념해 기획됐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