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요리 롤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1328쪽·7만8000원·백년후
일상 속에서 요리란 다분히 반복적이고 습관적이다.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방식대로 만들면 된다. 계량적이고 분석적인 원리보다는 어머니의 손맛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도 강하다. 그러나 전통음식도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누군가가 언젠가 새롭게 창조한 요리다. 요리 재료의 질감 맛 향 등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안다면 그 창조 과정은 훨씬 선명해질 것이다. 고기의 모순적 특성을 극복하고 연하고 육즙이 많도록 굽는 최선의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요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실제 요리에 구현하는 일에 평생을 보낸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주요 요리재료들의 과학적 특성과 요리에 담긴 비결을 백과사전 식으로 담아냈다. 그가 다루는 요리는 서양 요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요리의 재료를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다 보니 지역적 한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한국의 김치 된장 등을 포함해 남미와 아프리카 음식도 등장한다. 김치에 대해서는 “밥이라는 다소 단조로운 맛을 가진 음식에 필수적으로 딸려 나오는 반찬이다…온전한 배추의 줄기와 잎사귀들을 매운 고추, 마늘, 갖가지 채소, 젓갈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라고 깔끔히 설명한다. 김치와 독일의 사워크라우트를 연결하고, 젓갈과 동남아시아의 민물 생선 소스도 함께 살핀다. 동물의 젖이 30여 가지 치즈로 변하는 과정은 한 장의 도표로 설명해낸다. 달걀을 설명할 때는 3억 년 전쯤 파충류가 치명적인 수분 손실을 지연시키기 위해 처음 가죽 같은 껍질을 가진 알을 낳았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미국의 쇠고기 품질 등급에 관한 에피소드는 우리 사이에 널리 퍼진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다. 1920년대 미국 중서부와 동부의 목축업자들이 농무부 장관을 설득해 지방이 고르게 함유된 이른바 ‘마블링’(쇠고기에 대리석의 무늬처럼 지방이 촘촘히 박힌 모양)이 많은 고기가 높은 등급을 받도록 했다. 몇 년 후 미국 정부는 다량의 마블링이 쇠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지만 마블링이 풍부한 쇠고기의 지위는 계속 유지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현재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기준으로 삼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세 나라뿐”이라고 말한다.
날고기는 향보다는 맛이 좋고, 익히면 향이 생겨난다. 근섬유에 물리적 손상을 입힘으로써 더 많은 육즙과 혀를 자극하는 물질이 나오는 것이다. 육즙 배출은 잘 알려진 대로 가볍게 익힐 때(레어·rare) 최대가 된다. 온도가 올라가고 물기가 마르면 화학적 변화가 중요해진다. 세포 분자들이 재결합해 과일 향, 꽃 냄새, 견과 맛 등을 풍기는 분자들이 생겨남으로써 고기의 향이 풍부해진다.
감자는 중심부가 익는 동안 겉이 과도하게 익어서 부서질 가능성이 크다. 겉 부분을 탄탄하게 유지하는 데는 약산성의 센물이 유리하다. 또 찬물에 감자를 넣고 삶기 시작하는 것이 세포벽을 강화해 모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흔히 넣는 소금은 겉이 빨리 물러지게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재료의 기원, 과학적 특성에 따른 조리 방법, 요리와 관련한 에피소드 등이 함께 버무려진 ‘뷔페’를 접하는 느낌이다.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백과사전 식으로 꾸며져 있어 주방에 두고 원하는 부문만 골라 ‘섭취’하기는 쉽다. 번역 감수를 맡았던 레스토랑 ‘SUH SENG HO’의 서승호 대표(프랑스요리 전문가)는 감수를 하면서 오히려 많이 배웠다며 수고비를 사양하고 출판 관계자들에게 음식까지 대접했다고 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