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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한 사람에 대한 속마음, 예술가의 편지

입력 | 2011-02-26 03:00:00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강인숙 편저 248쪽·1만6000원·마음산책




김남조 시인이 소설가 최정희 씨 에게 보낸 편지. 마음산책 제공

가을 밤 남편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띄운다.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감사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까 봐 두렵소.”

소설가 조정래 씨는 아내인 김초혜 시인에게 절절한 연애편지를 띄웠다. 1985년 9월 22일 쓴 편지 말미에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의 남편 정래’라고도 남겼다.

소설가 박범신 씨가 부인 황정원 씨에게 1971년 12월 6일 보낸 편지는 진지하면서도 익살맞다. “그렇다. 우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은 우리가 백번 겸손해도 좋을 만큼 깊고 뜨겁고 목이 멘다. 목이 멘다.(꾸룩…꼬르룩-<주> 목이 메는 소리)” 농담을 섞어가며 아내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치가 눈에 띈다.

책은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이 쓴 친필 편지 49점을 소개한다.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등 작가의 내밀한 생각이 편지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저자는 “편지는 일인칭으로 쓰인 작가의 육성이고 내면 소리의 직역본(直譯本)”이라고 말한다.

김상옥 시인은 딸에게 “공부도 소중하지만, 몸이 더 소중하니 부디 몸조심하여라”라고 말하고, 김남조 시인은 신달자 시인에게 “아기가 그새 많이 자랐겠지. 산후에 보내준 편지 받고 한번 가보고 싶어서 쉬이 가보리라는 생각으로 답장도 못 썼었어”라고 정감어린 글을 전한다.

지난달 별세한 박완서 소설가가 2005년 11월 12일 이해인 수녀에게 쓴 편지는 너무 솔직해서 아프게 다가온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고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집 ‘민들레영토’의 출간 30주년을 맞아 보낸 글에서 1988년 남편과 외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아픔을 솔직히 밝히고 그간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 저에게 수녀님의 존재, 수녀님의 문학은 제가 이 지상에 속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지상에 속했고, 여러 착하고 아름다운 분들과 동행할 수 있는 기쁨을 저에게 가르쳐준 수녀님 감사합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