築은 築城을 말한다. 如之何則可는 그것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고 묻는 말이다. 등薛(등설)이라고 하면 춘추전국 시대의 등나라와 설나라를 합쳐 가리키는 말로, 약소국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해도 一國의 정치는 아무나 맡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단지 한 인물이 덕이 있고 명망이 높다고 하여 맡아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논어’ ‘憲問(헌문)’에서 공자는 ‘孟公綽(맹공작)은 趙(조)나라와 魏(위나라)의 家老(가로)가 되기에는 넉넉하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大夫(대부)는 될 수가 없다’고 했다. 맹공작은 인품이 뛰어나 대국의 가신들 가운데 우두머리 역할은 할 수 있지만 행정적 재능이 없기 때문에 재상의 직책은 맡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外交는 內政보다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군주 한 사람이 덕을 닦는다고 해서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맹자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맹자는 등문공의 질문에 대해 ‘군주로서는 힘써 善을 행하는 일밖에 없다’고 대답하게 된다. 어째서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