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주필
중동 민주화는 지지, 北에는 침묵
70억 세계인 가운데는 사우스 코리아와 노스 코리아를 혼동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코리아라면 김정일을 떠올리는 세계인에게 ‘코리안’은 오명(汚名)이 되고 만다. 김정일은 독재자를 넘어 반인륜범죄자로, 한민족을 부끄럽게 만드는 존재다.
진보 정치학자 가운데 최장집 교수는 이명박 정부 3년을 돌아보며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이것이 상식에 가깝다. 이쯤에서 한국의 민주화세력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북한이다.
그러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북한 민주화나 주민 인권보다 김정일 집단의 심기(心氣)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박 의원은 “북한을 자극하면 북한도 자구(自救) 차원에서 무엇인가 또 ‘일’을 하기 때문에 삐라 살포 등 우리 정부의 심리전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조차 ‘일’이라고 표현하는 세심한 배려가 놀랍다. 북한 주민의 어둠은 방치하고 북한 정권에만 ‘햇볕’을 제공하는 것은 반민주 부채질이다.
국내 좌파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중동의 민주화 확산에 대해서는 ‘인류 보편의 가치 실현’이라고 평가한다. 이 계통의 한 신문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요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 그리고 경제적 평등의 확산을 바라는 아랍인들의 싸움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북한인권법 거부세력 국회 장악
몇몇 좌파 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가 리비아 상황에 대해 부끄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항의시위까지 벌였다. 이들 단체는 카다피를 향해 “42년 독재도 모자라 권력세습을 꾀하며 의회와 헌법을 폐기했고 모든 방송을 관영화해 검열한다”고 비난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62년 수령독재 공포정치도 모자라 3대 세습까지 꾀하며 ‘거수기 인민회의’와 ‘앵무새 방송’밖에 허용하지 않고 20만 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었다. 북한의 경제사회적 불평등 역시 세계 최악이다. 김정일 일가의 호화사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김일성 왕조를 옹위하는 일부 특권층도 ‘기쁨조’라는 성적 노리개 여성들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그 뒷전의 대다수 주민은 세계로부터 차단당한 채 인간 이하의 삶에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인권법 하나 제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민노당이 입법을 한사코 반대하고, 한나라당은 무기력하다. 미국은 이미 7년 전인 2004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한을 거듭 연장하면서 대북 인권운동단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 민주화세력은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당신들은 더 이상 민주화세력도, 진보세력도 아니다. 세상에 어떤 진보가 상시적으로 인권유린을 당하는 동족을 수십, 수백 km 옆에 두고도 이들을 탄압하는 세계 최악의 독재정권만 두둔한단 말인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