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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폭설에 갇힌 산양 구하라”

입력 | 2011-03-02 03:00:00


지난달 17일 설악산 저항령 부근에서 산양 한 마리가 눈 속에 고립돼 있다. 이 산양은 이날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연구진에 발견돼 구조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1일 오후 강원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계곡 일대를 순찰 중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이배근 복원연구팀장은 가슴이 터질 듯한 숨을 참으며 온 산을 헤매고 있었다. 이 팀장을 비롯한 복원센터 연구원들은 최근 매일같이 설악산 일대를 순찰하고 있는 상황. 지난달 이 지역에 내린 폭설로 몰살 위기에 빠진 멸종위기종(1급)이자 천연기념물(217호)인 ‘산양’을 구하기 위해서다.

○ 작년부터 이상기후로 위기에 처해

한반도 산양은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서식했지만 무분별한 포획으로 1980년대부터 급격히 개체수가 감소했다. 현재 강원과 경북도 등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700∼800마리만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양은 워낙 깊은 산속에 살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정확한 마릿수는 알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부터 이상기후로 폭설이 잦아지면서 산속에 사는 산양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숨지는 위기상황이 자주 발생한 것. 이 때문에 복원센터는 눈이 많이 오는 1∼3월 초 119구조대처럼 순찰을 돌며 산양구조에 나선다.

산양구조 활동은 오전 9시에 시작된다. 구조대원들은 설악산의 눈이 녹기 전까지 산양이 살 만한 주요지역인 저항령 계곡, 흑선동 일대, 미시령 일대, 한계령 일대 등을 순찰할 계획이다. 이 중 저항령 계곡 안 골짜기가 순찰하기에 가장 힘들다고 대원들은 말한다.

이 팀장은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어 걷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눈 속에 길을 내기 위해서는 7, 8명이 스노 슈즈를 신고 한 줄로 서서 걷는다. 앞사람이 조금 뚫으면 뒷사람이 더 뚫는 식으로 8명이 걷다 보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평지는 눈길을 100m 뚫는 데 15분, 경사진 곳은 30분 이상 걸린다.

길을 뚫은 후 골짜기 곳곳을 살피다 보면 눈에 갇혀 고립된 산양을 찾을 수 있다. 산양의 다리 길이는 40∼50cm로 비교적 짧은 데다 가늘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눈에 갇히면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다 탈진해 죽는다고 한다. 겨우 눈 속을 빠져나와도 먹이를 찾을 힘이 없어 영양실조로 죽는다.

○ 구조한 뒤 소금으로 원기회복시켜

 

산양을 발견하면 최대한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다 자란 어른 산양의 경우 구조 중에 발로 사람을 찰 수도 있어 안정제를 투여해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후 산양을 지게로 지고 눈이 적은 곳으로 옮긴 후 구조상자에 넣어 복원센터로 이동시킨다. 복원센터는 지난달 17일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눈 속에 갇힌 어미 산양과 새끼 산양 등 2마리를, 같은 달 21일에는 인근 장소에서 추가로 1마리를 더 구조했다.

하지만 구조된 경우보다는 죽은 채 발견되는 산양이 더 많다. 지난해 3∼5월 경북 울진군 일대에선 죽은 산양 22마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기아와 탈진이 원인. 그렇다고 겨울철에 야생동물을 일일이 찾아 먹이를 주기도 어렵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야생성 상실 등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계류 시설에 도착한 산양은 일주일간 ‘원기 회복’ 과정을 거친다. 준비한 식물 잎사귀와 건초를 주고 꼭 소금을 먹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양제도 놓는다. 이후 안정을 보이면 눈이 녹는 4월 말∼5월에 다시 산으로 방사한다. 이 팀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산양이 사람과 친해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어린 산양은 사람과 친해지면 야생성을 잃어 방사한 뒤 죽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 산양 멸종위기 극복해야


‘구조’만 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복원센터는 지난해 2∼3월 구조한 산양 4마리를 5월경 방사해 현재 산양 행태를 연구하고 있다. 위치추적장치를 몸에 달아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산양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을 조사 연구한다. 이들의 행적을 쫓아 배설물도 분석한다.

발신기를 단 산양들에게서 수신음이 4시간 정도 없다면 눈에 갇힌 것으로 보고 구조에 나선다. 국립공원공단과 복원센터는 이런 자료를 토대로 각 지역 내 고립된 산양 종자를 교류시켜 생명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국립공원공단 양두하 생태복원팀 과장은 “전국의 산양 분포 지역을 보면 특정 지역 안에서 고립된 경우가 많다”며 “각 지역의 산양 유전자를 연구해 질병 등에 강한 산양은 그렇지 못한 타 지역의 산양 무리로 옮기고 몸이 약한 산양은 유전자가 건강한 산양 무리가 있는 곳으로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산양의 생존력을 키우고 서식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