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로 건너간 우리음식 ‘승기악탕’이 역수입돼”
스키야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농가에 들러 사냥에서 잡은 기러기와 오리를 내놓으며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쇼군을 대접할 마땅한 그릇이 없어 고민하던 농부가 할 수 없이 농사지을 때 쓰는 가래를 깨끗이 닦아 그 위에 고기를 구워 바친 것이 스키야키의 유래라고 한다.
가래를 뜻하는 스키(すき)와 구이를 뜻하는 야키(燒き)가 합해져 스키야키라는 이름의 요리가 됐다는 것인데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소개한 이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만 빼면 실제 가래에 새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19세기 초반 요리책인 요리조지남(料理早指南)에 보이기 때문이다. 가래 위에다 오리, 닭, 고래 고기 등을 놓고 구워 먹었다(사진).
흥미로운 것은 스키야키는 대표적인 일본의 쇠고기 요리지만 문헌에는 쇠고기는 고사하고 네 발 달린 동물의 고기를 요리했다는 기록조차 없다는 점이다. 조류나 생선을 요리했다는 내용만 보인다. 일본에서는 7세기부터 19세기 말 에도시대까지 육식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한때 스키야키가 유행했지만 사실 이 음식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꽤 오래전이다. 정조 때 실학자인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 일본인들은 승기악이(勝其岳伊)를 진미로 여기는데 도미, 복어를 손질해 다듬고 달걀, 미나리, 파 등을 익혀서 잡탕을 만든다고 했다. 스키야키를 한자로 승기악이라고 표기한 것인데 사람들이 삼나무 아래 모여서 먹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영조 때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도 해사일기에서 대마도 도주가 통신사에게 승기악(勝妓樂)을 대접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역시 스키야키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최남선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스키야키는 승기악탕이라는 우리나라 요리가 일본으로 건너가 발전했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최영년이 1925년에 쓴 해동죽지(海東竹枝)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승기악탕은 원래 황해도 해주의 명물 음식인데 조선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가 다시 일본과 가까운 부산 지방으로 역수입됐다는 것이다.
참고로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는 이름은 한자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음식 맛이 기생과 노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