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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일과 삶]이동훈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대표

입력 | 2011-03-05 03:00:00

한국 알릴 선물은 영화DVD만한게 없죠




“영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너무 몰라 깜짝 놀랐다”는 이동훈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대표는 한국문화를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에 영국 본사에서 온 손님들에게 한국영화 DVD를 꼭 선물한다. 그는 잘못된 영어 번역이 있으면 꼬집어낼 정도로 전문가 수준에 올랐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는 누군가에게 납치돼 허름한 방에 갇힌다. 탈출을 꿈꾸며 지낸 15년,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납치됐던 바로 그 장소로 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대수는 자신을 납치했다 다시 풀어준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다. “고지식한 놈.”

올드보이 DVD의 영어 자막을 보면 “고지식한 놈”이라는 대사가 “numskull(넘스컬)”로 번역된다. 이동훈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대표는 이 부분이 못마땅하다. 그는 “‘numskull’은 그저 바보, 멍청이를 의미하는데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며 “‘stubborn(스터번)’ 같은 단어를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한마디 했다.

○ 한국영화 DVD 선물로 주다 보니

이동훈 대표는 영화인도, 전문 영어 번역가도 아니다. 그는 BMW, 포드, 재규어랜드로버 등 유럽산 자동차를 한국에 들여와 판매하는 수입상으로 14년간 일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한국영화 DVD 자막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수입차 본사에서 온 손님들에게 한국영화 DVD를 선물로 주다 보니 자막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됐고 자막을 보다 보니 아쉬운 번역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영화 DVD를 선물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포드 PAG(Premier Automotive Group) 내 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 대표로 일하면서부터다. 재규어랜드로버와 연을 맺기 전에도 LG전자 해외영업팀, BMW코리아 해외영업팀 등에서 외국 손님들을 많이 만나 봤지만, 특히 재규어랜드로버 본사 손님들에게는 한국영화 DVD 선물이 유용하다고 그는 말한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는 둘 다 영국 런던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변두리에 본사와 공장이 있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정보가 어둡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우리는 88올림픽, 월드컵 유치 등으로 한국이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하지만 유럽에서도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며 “북한과 남한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이렇게까지 한국을 모르나’라며 놀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본사 사람들에게 한국을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영화를 떠올렸다. 전에는 주로 외국 손님에게 한국 공예품을 건넸는데 한국을 모르는 영국인에게 공예품만 주자니 아쉬웠다. 그는 “한국인의 생활, 역사, 문화를 알리기에 영화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 철학적 영화가 유럽인에게 먹혀

이 대표는 지금까지 한국영화 DVD 15편 정도를 100여 명에게 나눠줬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빈집’ ‘시간’을 비롯해 ‘영어완전정복’ ‘각설탕’ ‘왕의 남자’ ‘올드보이’ ‘광식이 동생 광태’ ‘여친소(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황진이’ ‘서편제’ 등이 목록에 올라왔다.

이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다. 대사가 많지 않고 영상이 아름답고 불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어 서양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 ‘빈집’ ‘시간’도 모두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이 대표는 김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영국 손님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코미디 영화인 ‘영어완전정복’은 영어 배우는 한국인들의 애환(?)을 알려주고 싶어서, 승마를 주제로 한 ‘각설탕’은 유난히 말을 좋아하는 본사 인사담당총괄 임원에게 주기 위해 선택했다. 그는 “본사 손님들에게 장거리 비행 시 볼 DVD를 주면 대개 좋아하고, 그 DVD가 한국 문화를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일 경우 더욱 좋아하더라”며 ‘DVD 영업’의 효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정(情)’이 ‘jeong’?

선물하려고 DVD를 고르다 보니 한국 영화감독들과 DVD 번역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아졌다. 이 대표는 “좀 더 신경을 쓰면 좋아질 텐데 성의 없어 보이는 번역이 여러 군데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주인공이 “뭘 먼저 먹을까? 김치찌개? 장어구이?”라고 말하면 자막에 “What shall I eat first?”라고만 표기되고 김치찌개와 장어구이는 아예 빠지거나, ‘kimchi jjigae’ ‘jangeo gu-i’ 등 우리말의 소리 나는 그대로 표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정(情)’ ‘한(恨)’ 등의 용어가 ‘jeong’ 이나 ‘han’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말들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가 딱히 없긴 한데, 조금 더 친절하게 풀어 써 준다면 외국인들에게 훨씬 효과적으로 우리 문화를 이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폭력성과 잔인성이다. 그는 “올드보이를 선물 받은 사람 중 절반이 ‘너무 잔인해 중간에 보다 말았다’고 말했다”며 “요새 우리나라 영화는 무난한 것이 드물고 자극적인 것이 많아 선물을 줄 때 고민된다”고 털어놓았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이동훈 대표는

―1966년 출생

―1991년 한양대 기계공학부 졸업

―1991∼1996년 LG전자 해외영업팀

―1997∼2002년 BMW 코리아 영업·마케팅 팀장, 마케팅팀 총괄부장

―2003년 1∼9월 BMW 한독모터스 영업마케팅 총괄이사

―2003년 10월∼2004년 10월 페라리& 마세라티 국내수입원 총괄이사

―2004년 11월∼2008년 4월 포드 PAG 상무이사(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 대표)

―2008년 4월∼현재 재규어랜드로버 코리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