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지음·김명철 옮김 408쪽·1만4000원·김영사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실험을 위해 만든 영상이다. 이 동영상을 볼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고 미리 얘기해 둔다. 동영상을 보고 난 참가자들에게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혹시 고릴라 보셨어요?”
동영상에는 고릴라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이 천천히 등장해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퇴장한다. 그러나 참가자의 50%는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고릴라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릴라 실험은 ‘주의력 착각’과 관련된다. 특정 모습이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을 때면 예상치 못한 사물이 나타나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으로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주의력 착각은 종종 사고와 연결된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충돌 사고가 대표적이다. 사고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오토바이를 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즉, 오토바이가 자신의 진행 방향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회전을 할 때도 다른 차가 있는지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오토바이를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연속되는 장면에서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 맹시’도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길을 물어보는 사람과 지도를 보면서 얘기하던 도중 커다란 목재 문짝을 옮기는 인부들이 두 사람 사이로 지나간다. 그 틈을 노려 길을 가르쳐 주던 상대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 이 실험에서 길을 물어보던 사람 가운데 50% 이상이 대화 상대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기억이 현재의 믿음에 일치되도록 다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실시된 한 조사에서 미국 국민인 조사 대상의 3분의 2가 선거에서 케네디를 찍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실제의 1960년 미 대선의 결과는 50 대 50의 접전이었다.
‘자신감 착각’은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체스대회 참가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자의 실력이 얼마나 저평가됐다고 보는지 질문하는 실험이 있었다. 자신이 150점 정도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중간 이하의 실력 집단에 속해 있었다. 중간 이상 실력의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50점 정도를 덜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 실험에서 보듯 예선 통과도 못할 실력으로 ‘아메리칸 아이돌’에 참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정말 잘한다고 믿는 ‘자신감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자신감 착각’이 ‘기억력 착각’과 결합하면 큰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잘못된 기억을 토대로 자신 있게 법정에서 증언하는 증인의 사례를 예상할 수 있다. 이 밖에 ‘지식 착각’, ‘원인 착각’, ‘잠재력 착각’도 다룬다.
읽다 보면 가슴이 뜨끔해진다. 누구나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착각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간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직관을 조심하라는 것. 특히 복잡다단해진 현대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관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 특히 중요한 사안이라면 직관을 신뢰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라고 저자들은 조언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