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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방형남]귀순자 가족

입력 | 2011-03-08 03:00:00


남한에 정착한 지 10년이 된 탈북자 김송희 씨(30)는 3년 전 북한에 남아 있는 아버지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하던 그는 정착금 일부에 저축한 돈을 보태 2000만 원을 가족에게 송금했다. 300만 원을 브로커에게 수수료로 떼어 줬지만 김 씨의 아버지는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한 김 씨는 탈북을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확신한다.

▷탈북이든 귀순이든 국내에 정착한 북한 주민의 가장 큰 고통은 가족과의 생이별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다리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북한의 가족에게 보낸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달 15세 이상 탈북자 396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49.5%가 북한에 송금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작년 한 해 송금한 금액은 51만∼100만 원이 31.7%로 가장 많았고 101만∼200만 원(16.7%), 500만 원 이상(12.5%) 순이었다.

▷돈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북한에 있는 혈육을 데려오는 모험에 나서는 탈북자도 많다. 가족 상봉 또는 동반 탈출 시도를 위해 다시 북한에 잠입하는 탈북자가 늘어나자 북한의 역(逆)공작도 시작됐다. 2004년 이모 씨는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가려다가 북한 경비병에게 붙잡혔다. 그는 처벌을 면하기 위해 남측의 합동신문기관 ‘대성공사’와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 ‘하나원’의 운영상황을 털어놓았다. 북한은 이 씨에게 한 달 동안 간첩교육을 시켜 남한에 내려보냈으나 그는 재입국하자마자 관계 당국에 자수했다.

▷북한은 외국에 공직자나 외화벌이 일꾼을 내보낼 때도 탈북하지 못하도록 가족을 동행시키지 않는다. 서해에서 조개잡이를 하다 지난달 5일 남쪽으로 떠내려온 북한 주민 31명 가운데 4명이 귀순의사를 밝히자 북한이 ‘가족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은 어제 적십자 실무 접촉에 귀순 희망자의 가족을 데리고 나오겠다며 우리 측에 당사자 4명의 출두를 요구했다. 북한이 귀순자의 가족을 동원하려는 이유는 뻔하다. 4명이 귀순 의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다. 정부는 북한이 군소리하지 못하도록 귀순 희망자의 의사를 확인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