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기획팀장
날씨도 날씨지만 해가 길어진 것을 귀신처럼 아는 새들은 봄을 맞아 짝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수컷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자신의 구애를 받아줄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날개를 위협적으로 펄럭거리거나 목청을 높여 울면서 경쟁자를 쫓아낸다. 그래서 새들의 봄은 바쁘고 소란스럽다. 참새와 멧새, 박새 같은 작은 새들은 짝을 찾아 열심히 구애를 하고 목청껏 노래하며 자신의 영역이라고 알린다. 덩치 큰 타조도 긴 목을 트럼펫처럼 울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자기를 과시한다. 소란스럽기로 하면 큰물새장의 홍부리황새가 으뜸이다. 수도 많지만 부리를 부딪쳐 내는 ‘딱딱딱’ 소리가 봄이 되면 더 커진다.
홍부리황새만큼 요란하지는 않지만 두루미들에게도 봄은 중요한 시기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날개를 펄럭이며 구애의 춤을 춘다. 우아해 보이는 학춤이지만 이 시기가 사육사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다. 두루미는 땅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기 때문에 이때만 되면 매일 보는 사육사라도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행여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것이 아닌가 하여 긴 다리로 성큼 달려들어 날카로운 부리로 눈을 공격한다.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새끼들의 울음소리도 높아진다. 천연기념물 잔점박이물범은 2월 말에 새하얀 새끼를 낳았고 조금 있으면 사슴이며 영양들의 새끼들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굴속으로 들어갔던 반달가슴곰 ‘으뜸’이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 추위가 심했던 1월 초에 새끼 2마리를 낳아 젖을 먹이고 행여 추울까 따뜻하게 보듬어 가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이번에 태어난 새끼 두 마리도 2년 전에 태어난 형제를 따라 지리산으로 가서 야생 방사훈련을 거친 후 자연의 품으로 보내질 예정인데 3월이 지나갈 때쯤이면 굴 밖에서 아장아장 걷는 새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외투가 가벼워지듯 동물들도 큼지막한 돌에 몸을 이리저리 비벼대며 두꺼운 털옷을 뭉텅뭉텅 벗겨내고 산뜻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혹한과 구제역에 맞서 싸워 건강하게 이겨내 준 동물들이 있어 이 봄이 여느 봄보다 더 반갑고 기쁘다.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