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씨, 덩샤오핑 손녀라며 자신 소개”… “외삼촌이 상하이 당서기 됐다고 해”
한국 체류 당시의 덩 씨 덩 신 밍 씨가 2009년 한국 체류 당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덩 씨는 2001년 결혼한 남편 진모씨(37)에게 자신을 ‘홍콩의 몰락한 사업가 딸’로 소개했으며 중국 산둥(山東) 성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반면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친 한국 영사들은 하나같이 덩 씨를 중국 최고권력가 출신으로 믿고 있었다. 덩 씨로부터 협박당한 K 전 상무관은 “덩
씨가 자신을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의 손녀라고 스스로 말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덩 씨는 2001년 12월 29일 진 씨와 경기 수원시에서 혼인신고를 했으며 결혼식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올렸다. 2004년 딸을 낳았지만 본인만 여전히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상하이의 한 한중 합작기업에서 일하는 진 씨는 “아내를 상하이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며 “결혼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덩 씨가 변신을 시작한 것은 결혼 6년여가 지난 2007년부터다. 덩 씨는 당시 진 씨에게 “외삼촌이 상하이 당서기로 새로 부임했다”며 “앞으로 상하이 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말한 후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었다고 한다. 덩 씨의 귀가는 오후 11시, 밤 12시로 점점 늦어졌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늘었다. 2007년은 시진핑 당시 상하이 당서기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후계자로 사실상 내정되면서 태자당(太子黨)의 선두주자인 위정성 전후베이(湖北) 당서기가 신임 상하이 당서기로 선출된 해다. 이 즈음부터 덩씨는 상하이 한국총영사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덩 씨는 평소 상하이 시 고위 당국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한국 외교관들에게 자신이 ‘숨은 실력자’라는 인상을 심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영사는 “덩 씨가 한정 상하이 시장은 물론이고 위정성 상하이 당서기 등 상하이 최고위 관계자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며 “관계를 중요시하는 중국 사회에서 그런 인맥은 쉽게 만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상하이 현지 교민사회에도 덩 씨가 덩샤오핑의 손녀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김 전 총영사는 “(덩씨를) 덩 전 주석의 방계 손녀로 보고있다”며 “설령 국정원이 직원 1000명을 동원해도 덩 씨의 정체를 밝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덩 씨는 다른 한인 관계자들에게는 ‘상하이 푸단(復旦)대 총장’이나 ‘상하이 시 부시장 비서관’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덩 씨와 인연을 맺었던 김 전 총영사를 비롯해 외교통상부 P 전 영사, 지식경제부 K 전 상무관, 법무부 H 전영사 등도 덩 씨를 상하이 시 정부와 통하는 비공식 라인으로 보고 각종 민원을 부탁하는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이들 외교관은 “덩 씨의 힘이 막강하다”며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덩 씨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덩 씨는 이들을 ‘실적’과 ‘힘’으로 압박하며 민원 해결의 대가로 대통령 정보 등 각종 자료를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시각도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 치안영사 출신인 K 씨는 “덩 씨가 워낙 말을 잘해 총영사를 비롯해 많은 총영사관 직원이 속았다”며 “실제 덩씨의 ‘라인’은 그다지 고위급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