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여행 앨리스 로버츠 지음·진주현 옮김 652쪽·2만5000원·책과함께
박선주 충북대 교수 고인류학 전공
역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수학했으며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소속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APC)에서 법의(法醫) 인류학자로 활동 중이다. 인류학 전문가답게 그는 방대하고도 전문적 서술이 많은 이 책의 내용을 깔끔한 문체로 정확히 전달해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현생인류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내용에 매료돼 조상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동하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고고학 및 고인류학 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고 현지 주민을 만나 함께 생활한 내용과 현생인류에 관한 고인류학계의 주요 논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호주, 북으로는 유럽과 시베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메리카까지의 긴 여정을 통해 현생인류의 기원과 궤적을 쫓아간다.
네안데르탈 게놈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유전학자들을 만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혼혈에 대한 견해를 듣기도 한다. 이 같은 다양한 학자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류학의 다양한 논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직접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주민들과 생활하며, 관련 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최근 연구 성과를 직접 청취하여 기술한 것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생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임을 강조한다. 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는 했으나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의 후손들이 지구의 환경 변화로 다시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위부터 시베리아 올레네크 에서 순록을 탄 에벤크족 소녀, 말레이시아 렝공 계 곡의 에어 바에 있는 전통 가옥, 길 위에서 만난 쿤과 아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 칼라하리에서 사냥하 는 모습, 최초의 현생인류 머리뼈가 발견된 곳에서 모형 머리뼈를 들고 웃고 있는 저자. 책과함께 제공
아프리카에서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은 언어의 발달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유전학자들은 동아프리카에 살던 호모사피엔스(슬기사람)의 수를 500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렇게 적은 수의 인류 집단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이들이 같은 삶의 방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전에 인류의 기본적 특성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하며 인류의 진화와 이동 과정을 소개하는 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다. 고인류학 전공자로서 저자의 위대한 여행에 박수를 보내며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소개되어 고고학이나 고인류학이 우리와 멀지 않은 학문이며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님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선주 충북대 교수 고인류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