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도로… 정전… 미항 하코다테까지 유령도시로
동아일보 취재팀은 12일 오전 도쿄를 떠나 자동차로 9시간을 달린 끝에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후쿠시마(福島)에 도착했다. 진앙에 가까운 북쪽으로 갈수록 공포의 강도는 거세졌다. 식료품이 동난 편의점, 휘발유가 바닥난 주유소, 방이 없는 호텔…. 동북부 지방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마비됐다.
○ 익사체 대거 발견, 인프라 붕괴
신칸센은 철로 손상 등으로 수도권에서 조에쓰(上越)와 나가노(長野)를 연결하는 구간의 운행이 중단됐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곳을 중심으로 통신 두절 사태가 빈발했고 동북부의 도로 곳곳이 완전히 침수 또는 유실돼 물류도 마비됐다.
통신 두절로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다. 지진 발생 후 전화 연결이 어렵게 되자 일본의 각 통신사들은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안전 확인 전언판’을 운영하고 있다. 피해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함’ ‘피해를 입었음’ ‘집에 있음’ 등의 짤막한 메시지를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설령 통화는 못해도 이 사람의 전화번호만 조회해 현재 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한편 미야기 현과 이와테(巖手) 현 해안을 운행하던 열차 4대도 연락이 두절돼 한때 긴장이 고조됐지만 승객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이후 확인됐다. 이 중 1대는 탈선된 채로 승객 9명이 구조됐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 기적의 생환도 잇달아
미야기 현에서는 한 미완성 선박이 15시간을 표류하다가 12일 구조 헬기에 발견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박 근로자 81명도 전원 구조됐다. 이 지역 한 조선 업체가 건조 중이던 이 선박은 전날 10m 높이 쓰나미에 휩쓸려 먼 바다로 떠밀려갔다.
○ ‘유령 도시’로 변한 관광지
쓰나미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항인 홋카이도의 관문 하코다테도 덮쳤다. 이곳에 도달한 쓰나미의 높이는 2m로 다른 곳보다는 낮았지만, 도시 곳곳은 컨테이너 박스들과 나무 상자들이 뒹굴었다. 도로는 피난길에 오른 차로 꽉 막혔다. 유럽 건축물과 일본식 주택이 어우러져 동서양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주민 3만 명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졸지에 유령도시가 됐다. 시내의 명물인 케이블카와 열차마저 운행이 중단돼 차가 없는 사람들은 걸어서 대피해야 했다.
대지진은 벚꽃 철을 맞아 여행 성수기를 맞았던 일본 관광산업 전체에도 쓰나미를 몰고 왔다. 일본을 여행 중이던 관광객들이 황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세계 각국에서 일본 여행 상품 환불 사태가 벌어져 여행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관광명소들도 속속 영업을 중지하고 있다. 쓰나미로 일부가 침수된 도쿄 디즈니랜드는 즉시 휴관을 선포한 뒤 21일을 영업 재개 목표일로 삼고 안전 점검에 착수했다. 도쿄 만의 인공섬 오다이바도 지진으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 속에 묻혔다. 야간이면 황홀한 불을 밝혔던 도쿄타워와 레인보브리지, 오사카 번화가 도톤보리의 명물 간판 구리코 등 일본의 대표적 상징물과 명소들은 전력 절감을 위해 조명을 끄기로 했다.
○ 도쿄에서 후쿠시마까지의 9시간
도쿄를 떠나 동북부로 향하는 국도는 일반 차량 운행이 통제됐다. 취재차량과 구호트럭만이 국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라디오에선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왔다. 폭발지역 20km 밖으로 피하라”는 긴급 안내 방송이 되풀이됐다. 북쪽으로 다가갈수록 도로는 곳곳에 균열과 굴곡으로 파여 있었다. 자위대 병력을 태운 트럭들이 텅 빈 도로를 줄지어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치기 현 북쪽을 지날 무렵 취재차량의 휘발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주유소마다 기름이 없었다.
후쿠시마=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