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진 경제부 기자
정부 고위 관료들과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에 이어 원전 사고로 충격에 휩싸인 일본의 지인(知人)들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하는 서한외교를 펼치고 있다. ‘신사의 나라’인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일본은 전화나 e메일보다는 친필 편지나 서한을 보내는 것을 훨씬 격식 있게 벗의 예(禮)를 갖추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재무상 앞으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재정부는 일본 재무성과 2000년부터 매년 두 나라를 오가며 친선축구경기를 펼치는 등 끈끈한 우정을 맺어왔다. 그래서일까. 윤 장관의 서신에는 안타까움과 남다른 우의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비통하고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일본 국민과 함께 있다”는 글로 이어졌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15일 지미 쇼자부로(自見庄三郞) 금융·우정개혁상과 미쿠니야 가쓰노리(三國谷勝範) 금융청장관에게 위로 서한을 보냈다. 그는 “금융위는 양국의 금융시장이 질서 있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귀국에 필요한 지원을 해 드릴 것”이라며 “일본 국민이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대처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14일 포스코저팬을 통해 전략적 제휴관계인 신일본제철 무네오카 쇼지(宗岡正二) 사장뿐 아니라 JFE스틸 하야시다 에이지(林田英治) 사장, 스미토모금속 도모노 히로시(友野宏) 사장에게 각각 위로 서한을 전달했다. 정 회장은 편지에서 “임직원 모두의 안전과 각 제철소의 안정적인 가동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위로했다.
최관 고려대 교수(일어일문학)는 “일본은 안부나 위로를 편지로 보내는 문화가 살아있어 서한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일본인에게 더 깊숙이 와 닿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며 “더구나 한국에서 일본을 위로하는 경우가 근대 이후 역사에서 없었던 만큼 이번에 편지를 통한 유감 표명은 한일 관계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이웃의 불행에 대해 한국인이 지금까지 맺힌 응어리를 뛰어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방식”이라며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일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정혜진 경제부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