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머니가 수출로 돈을 번 이면엔 무역수지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있게 마련이다. 재정위기를 겪는 나라들의 눈에 독일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대미 수출로 돈 벌어 막대한 달러를 쟁여둔 중국에 대해 미국이 갖는 감정과 비슷할 터다. 구멍 난 재정을 미국은 달러를 찍어 메울 수 있지만 유럽은 다르다. 당장 구제금융 재원을 확충해야 하는데 여력이 있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에선 “우리 덕에 돈 벌었으니 돈 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허리띠를 졸라매 성공한 독일에 대해 흥청망청 살아온 나라들이 뒤늦게 손 내미는 형국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도움을 받고 싶으면 우리를 본받으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재정건전성을 지키고,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는 복지개혁을 하고, 임금인상을 자제하라는 ‘경쟁력 협약’이다. 반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유로화가 깨지면 손해 볼 것이 분명한 독일이 결국 처벌규정을 뺀 ‘유로협약’으로 물러섰다. 그 결과가 바로 닷새 전 브뤼셀 긴급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유로존 재정안정기금(EFSF) 실질대출여력 확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