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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종로 호떡’ 먹고 쇼핑 후 삼겹살 구우면서 생막걸리로 “간파이”

입력 | 2011-03-18 03:00:00

■ ‘제2한류’타고 도쿄에 한국음식 열풍




신오쿠보에서 인기인 ‘종로호떡’을 맛보고 있는 일본인 모녀.

《상쾌한 봄바람이 솔솔 불던 3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東京) 중심가 신오쿠보(新大久保) 거리. 한국식 호떡을 파는 ‘종로 호떡집’ 앞은 평일 낮인데도 일본인 20명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오카타 이치코(岡田 伊津子·50) 씨와 요시노 마이(吉野 麻依·24) 씨 모녀는 사이타마 현에서 1시간 넘게 기차를 갈아타고 신오쿠보로 나들이 왔다. “지난해부터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음식이 맛있어 보여 신오쿠보를 자주 찾아요. 도착하면 호떡을 먹고 1, 2시간 쇼핑을 한 뒤 한국식당에 갈 겁니다.”》
이 호떡집 특유의 ‘앙꼬 호떡(팥 호떡)’을 맛있게 먹은 이들은 삼겹살을 먹겠다고 옆 가게로 들어갔다. 1평(3.3m³)이나 될까. 직원 두 명이 호떡을 굽는 이 작은 점포의 한 달 매출은 무려 1800만 엔(약 2억5000만 원). 하루 평균 200엔짜리 호떡 3000장을 팔아 60만 엔의 매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주말에는 대기행렬이 훨씬 늘어난다.

‘제2의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음식이 일본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일부 한류팬의 특정 음식 맛보기 수준이 아니라, 이제 한국음식이 일본음식의 주류에 당당히 진입하고 있다.

○ ‘제2의 한류’

신오쿠보는 일본 간토 지역 최대의 한인 밀집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왔다. 이곳은 도쿄의 핵심인 신주쿠 역에서 한 정거장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도심이지만 일본인들에겐 그다지 선호 지역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흥업소와 러브호텔들로 가득 차 암암리에 매매춘이 벌어지던 우울한 동네였다.

그러나 2년여 전부터 신오쿠보는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러브호텔이 있던 자리는 대부분 한국 음식점이나 한류용품 상점, 한류 스타들의 대형 사진으로 벽면을 장식한 커피숍 등으로 바뀌었다.

‘종로호떡’을 비롯해 ‘종로본가’, ‘감자골’ 등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거산의 임우헌 차장은 “일본경제가 침체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신오쿠보는 유일하게 버블이 걱정스러울 정도”라며 “지난 1, 2년 사이 한국식당이 배로 늘어 80곳에 이르고 유동인구는 3배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신오쿠보 역은 도쿄의 핵심 전철인 ‘JR 야마노테선’ 역 가운데 드물게 출구가 하나밖에 없던 작은 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신오쿠보 열풍이 불며 하루 3만∼4만 명의 유동인구가 몰려들자 JR는 출구를 하나 더 여는 공사를 하고 있다.

신오쿠보의 한인들은 최근 이러한 열풍의 배경에는 ‘제2의 한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대 초반 배용준 최지우의 ‘겨울소나타’를 중심으로 한 첫 번째 한류는 주로 40, 50대 이상 일본 중년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2009년경부터 불고 있는 제2의 한류는 20, 30대 젊은 여성들 위주이지만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과 계층 모두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소녀시대, 카라 등 걸그룹들과 다양한 한국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영향이 컸다.

역설적으로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도 한류열풍에 큰 보탬이 됐다. 엔화가치는 크게 높아진 반면 원화가치는 급락했다. 100엔당 700∼800원 하던 원-엔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았고 지금도 1400원대 안팎에서 거래된다. 원화 대비 엔화의 가치가 거의 2배로 높아진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여행 비용이 반값으로 떨어진 셈. 자연히 일본인들이 우르르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일단 한국에 와본 사람들은 한국음식에 익숙해졌고, 이들은 신오쿠보의 단골 방문객이 됐다.

○ 막걸리, 순두부 인기…식초도 역수출

3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의 한국 식당 앞. 평일 낮인데도 한국 음식과 한류를 느끼려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도쿄=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호떡집 옆 삼겹살 전문점 ‘이타로’에서는 생막걸리가 병당 2000엔(약 2만8000원)에 팔린다. 요즘 도쿄에서 생막걸리는 웬만한 와인 못잖은 고급술로 꼽힌다. 이병문 이동막걸리 과장은 “이동막걸리가 한국 막걸리 최초로 일본에 진출한 뒤 15주년이 됐지만 요즘처럼 붐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며 “특히 20, 30대 일본여성들 사이에서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 칵테일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검은콩 막걸리 등 새 막걸리 종류뿐 아니라 기존에는 유통기한 제약 때문에 보급이 잘 안됐던 생막걸리 수요도 늘고 있다. 3년 전까지 10개 미만이던 막걸리 브랜드는 현재 30∼40개나 된다. ‘생막걸리’는 동네슈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광장의 외식사업부를 맡고 있는 함재호 부장은 “10년 전에는 일본인이 찾는 한국음식이 소주나 김치 정도가 전부였는데 최근에는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며 “일본의 유명한 규동 체인인 ‘마쓰야’에도 순두부찌개가 정식메뉴로 들어갈 정도”라고 전했다. 신오쿠보 거리 한식당의 일본인 비중도 크게 늘었다.

한국 식품회사의 일본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대상 청정원은 전통 식초발효기술을 바탕으로 몸에 좋은 100% 발효식초에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석류, 혈액순환에 좋은 복분자, 눈 건강에 좋은 블루베리, 소화개선 및 간 기능 향상에 좋은 매실 등 천연과실에 국산 벌꿀과 올리고당 식이섬유가 들어있는 ‘마시는 홍초’를 2006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한국시장에서 자신감을 얻은 대상은 이 제품을 들고 2009년 일본에 진출했다. 첫해 8600만 원 매출에 그쳤지만 2010년에는 3억9200만 원으로 4배 성장을 이뤘다. 한류스타 걸그룹 카라가 출연하는 ‘우라카라’라는 드라마에도 협찬하고 다이어트를 위한 벨리댄스 및 요가교실 등을 중심으로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대상재팬 배준호 과장은 “일본 진출 1년 만에 일본의 20, 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 ‘마시는 홍초 붐’이 일고 있다”며 “지난해 500개 매장에 입점했으나 올해는 매장이 3000개로 늘고 매출도 4, 5배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대지진 그리고 이후

기자가 신오쿠보를 찾은 뒤 일주일 뒤인 11일 최악의 대지진이 일본열도를 덮쳤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신오쿠보의 한식당가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거산 임우헌 차장은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진으로 엉망이 된 점포를 청소하고 수습하느라 경황이 없다”며 “계획 정전으로 전철이 제대로 다니지 않고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상 측도 “도쿄 주재원들과 직원들은 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다”면서 “최악의 참사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일본인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막걸리, 이치반데쓰!” 도쿄 국제식품박람회 한국관 ‘북적’▼

이달 초 열린 도쿄 국제식품박람회에 마련된 막걸리홍보관에서 일본 관람객이 한국산 막걸리를 맛보고 있다. 도쿄=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1∼4일 일본 지바 현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도쿄 국제식품박람회(푸덱스 저팬·Foodex Japan)은 세계 3대 식품박람회에 꼽히는 대규모 행사이다. 한국은 아시아국가 중 가장 많은 91개 업체가 참가해 한국 농산물과 식품의 우수성을 알렸다.

농수산물유통공사도 막걸리홍보관을 설치하고 매일 네 차례 ‘막걸리칵테일쇼’를 열며 막걸리를 널리 알렸다. 도쿄의 유명 바텐더들이 경쾌한 힙합 음악에 맞춰 막걸리 병을 던지며 다양한 음료를 섞어 가며 화려한 쇼를 벌이자 곳곳에서 관람객의 탄성이 퍼졌다. 국순당 진로 이동막걸리 등 국내 막걸리업체도 따로 부스를 만들어 새로운 막걸리를 홍보했다.

대상의 ‘마시는 홍초’도 일본 및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대상의 마시는 홍초 시식코너에서는 모델이 석류를 들고 몸에 좋은 ‘마시는 홍초’ 홍보에 나섰다. 이날 홍초를 시식한 오노 가즈에 씨는 “일본 식초음료는 신맛이 많이 나는데 대상의 홍초는 달착지근해 무척 먹기 좋다”고 말했다.

도쿄=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